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식물] 봄여름 내내 피는 보라색꽃… 희귀종인 노란색은 '병아리꽃'이라 불려

입력 : 2016.05.02 03:30

제비꽃

지금 우리나라 각지의 산과 들, 공원에는 제비의 이름을 딴 제비꽃이 한창 피어있어요. 지난달 9일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 삼짇날'부터 피기 시작한 제비꽃은 여름까지 계속 꽃을 피워요. 자줏빛 꽃잎이 날렵하게 생긴 모습이 물 찬 제비 날개를 닮았지요. 제비꽃은 다른 이름도 많아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란다고 해서 '앉은뱅이꽃'이라는 별명으로도 부르고, 흰색이나 노란색 꽃을 피우는 희귀 제비꽃의 경우 병아리를 닮아 '병아리꽃'이라고도 합니다.

제비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학교 화단 구석이나 등하굣길 주변 빈터 위주로 살펴보세요. 제비꽃의 서식지는 큰 나무나 무성한 풀이 없는 곳이랍니다. 경쟁자가 없어야 햇볕을 받고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비꽃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참 똑똑한 식물이지요.

제비꽃은 다른 식물과 달리 봄과 여름 두 계절 내내 꽃을 피웁니다.
제비꽃은 다른 식물과 달리 봄과 여름 두 계절 내내 꽃을 피웁니다. /박중환 제공
제비꽃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꽃을 피우는 시기로도 알 수 있어요. 대부분의 식물은 한 계절 딱 한 번 꽃을 피운 뒤 바로 열매를 맺어요. 한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게 튼실한 열매를 맺는 데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런데 제비꽃은 종족 번식을 위해 봄부터 여름까지 계속 꽃을 피우는 전략을 선택했답니다.

제비꽃 모양은 봄꽃과 여름꽃이 달라요. 봄에는 꽃잎을 뒤로 활짝 펼쳐서 피지요. 곤충들을 불러들여 타가수정(他家受精·같은 종의 다른 꽃과 꽃가루를 주고받아 수정하는 현상)을 하기 위해서예요. 반면, 여름에는 꽃잎을 오므려 피어요. 자가수정(自家受精·같은 그루 안에서 꽃가루를 주고받는 일)하기 위해서예요. 유전적으로 강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타가수정을 봄에 먼저 시도하고, 실패할 경우 여름에 자가수정을 하는 치밀한 생존 전략이죠.

만약 자가수정도 실패했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뿌리를 씨앗처럼 활용해 어떻게든 자손을 주변에 퍼뜨려요. 자신의 유전자를 똑같이 갖고 있는 새순이 뿌리에서 나오거든요. 종족 번식을 위해 타가수정, 자가수정, 뿌리의 3중 장치를 갖고 있는 것이죠.

덕분에 제비꽃만큼 흔하고 다양한 종을 가진 식물은 드물어요. 한반도 남쪽에 자생하는 제비꽃 종류만 해도 50여 종에 이르지요. 꽃 색깔은 대부분 자줏빛이지만 연둣빛·노란색·흰색·얼룩무늬 등으로 다양하며, 잎의 모양도 각양각색이지요.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민들레도 외래종까지 합쳐도 10여종에 그치고, 꽃 색깔은 대부분 노란색이고 흰색이 가끔 보일 뿐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제비꽃은 자신의 씨앗을 가능한 한 멀리 옮기고, 또 이듬해 무사히 새싹을 낼 수 있도록 묘책을 동원합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개가 없는 제비꽃 씨앗이 무슨 재주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제비꽃은 씨앗 한쪽 끝에 개미가 좋아하는 단백질·지방으로 이루어진 젤리 '엘라이오솜'을 묻혀둔답니다. 개미는 제비꽃 씨앗을 땅속 집에 옮긴 뒤, 엘라이오솜만 갈아 먹고는 굴 입구에 내다 버려요. 이듬해 제비꽃씨는 개미집 주변 비옥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지요. 그래서 제비꽃 주변에서는 개미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제비꽃은 개미를 동원해 씨앗을 먼 곳에서 자라게 해서 유전자가 비슷한 자식과 생존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작은 제비꽃이 튼튼한 줄기나 넓은 잎사귀 없이도 당당하게 살아남은 비결이지요. 제비꽃은 참 영리한 식물이죠?



박중환·식물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