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천재지변을 조선인 책임으로 떠넘기며… 6600명 학살 돼
입력 : 2016.04.28 03:10
일본 관동 대지진
최근 일본 구마모토에서 지진이 나 41명이 숨지고 2만여 명이 대피했어요. 지난 16일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태평양 가장자리에 속하는 남미 에콰도르 수도 키토 근처 해상에서 규모 7.8 지진이 발생해 최소 233명이 숨지고 수백만 인구가 이용하는 도시 시설이 파괴됐지요. 작년에는 국내에서도 전북 익산 지역에 규모 3.9의 내륙 지진이 발생한 적 있지요. 태평양을 둘러싼 지진이 계속되면서 '불의 고리 (Ring of Fire)' 가 살아나고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어요. 짧은 시간에 큰 피해를 남기는 지진은 예측하기 어려워 평소 대비책을 마련하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오늘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관동 대지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 1923년 9월 관동 대학살 당시 누명을 쓰고 체포당한 조선인들이 갇혀 있는 모습이에요.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이튿날 재해 수습에 나선 일본의 야마모토 곤베 내각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어요. 하지만 일본인들의 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죠. 이날 일본 내무성에서 각 경찰서에 보낸 치안 유지 명령에는 '조선인의 폭동에 대비하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들을 죽이고 있다'는 의도적 유언비어 유포까지 포함되어 있었어요.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잔인하고 야비한 방법을 동원한 거예요. 당시 일본인들은 억울한 조선인을 6600명가량 대량 학살했다고 해요. 일본 경찰과 군인들은 치안 유지를 이유로 학살을 방관하다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자 뒤늦게 법적 조처를 했어요. 천재지변을 조선인 책임으로 떠넘긴 '관동 대학살' 사건은 그해 10월 20일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보도되었죠.
지금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들은 관동 대학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아요. 명성사(明成社)에서 나온 교과서는 "한편으로는 조선인을 보호한 민간인과 경찰관도 있었다"고 기록해 일본인의 노력으로 대학살로 번지지 않은 것처럼 책임을 은폐하고 있지요.
일본 구마모토의 지진 소식은 인류애 차원에서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사상자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복구 작업이 빨리 이루어지길 한마음으로 바라요. 하지만 관동 대학살을 모호하게 기록하는 역사 왜곡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