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커튼 하나로… 빈 공간 채우고, 꿈꾸는 효과 주네

입력 : 2016.04.22 03:14 | 수정 : 2016.04.22 03:14

[커튼의 예술]

빛의 밝기와 분위기 조절하는 커튼
그림에선 꿈·현실의 구분 짓고 쾌적한 실내 환경 연출도 해줘
17세기 땐 귀중한 그림에 먼지 앉지 않도록 쳐놓기도

작품 1 사진
작품 1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콘스탄티누스의 꿈, 1452~1466년.

커튼은 빛을 조절하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줘요. 또 바깥세상의 시선을 차단해주고, 실내 분위기를 특별하게 연출하는 역할도 하지요. 실용성, 장식성을 두루 갖춰 미술 작품의 소재로도 인기가 많았어요. 오늘은 커튼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감상해볼까요?

작품 1 속 야전(野戰·들판에서 벌이는 전투) 막사에서 붉은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든 남자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랍니다.

때는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오랫동안 대립하던 로마의 권력자 막센티우스와 테베레 강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운명의 결전을 앞두고 잠을 청했어요. 그런데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황금 십자가를 보여주며 승리를 예고하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겠어요?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용기백배(勇氣百倍·격려에 자극을 받아 용기가 더 남)하여 군단 깃발의 휘장에 십자가를 그리도록 명령했고, 전쟁은 콘스탄티누스의 승리로 끝났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후 로마 시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존경받는 군주가 됐답니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작품 1에서 황금 십자가를 쥔 천사가 막사 안으로 날아 들어가는 장면을 그렸어요. 프란체스카는 이 그림에서 커튼을 사용해 커튼 안쪽은 꿈의 세계, 커튼 바깥쪽은 현실 세계로 구분 지었지요. 또한 커튼을 빛나는 황금색으로 칠하고, 가운데에 배치해 강조 효과를 줬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가브리엘 메취가 그린 작품 2는 하녀가 바느질을 하던 여주인에게 편지를 건넨 장면을 담았어요. 여주인은 무릎에 바느질용 방석을 올려놓은 채 집중해 편지를 읽고 있군요. 그 옆에선 등을 돌린 하녀가 검은 커튼을 들춰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마치 여주인이 받은 편지가 남편에 대한 나쁜 소식을 담았다고 암시하듯 말이에요.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벽에 거는 그림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커튼을 쳐놓았답니다.

작품 2, 3 사진
(사진 왼쪽)작품 2 - 가브리엘 메취, 편지 읽는 숙녀, 1662년~1665년. (사진 오른쪽)작품 3 - 베르트 모리조, 요람,1872년.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Impre ssionism·사물의 고유한 색보다 작가가 받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미술 운동)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는 작품 3을 그렸어요. 그녀는 이 그림을 통해 젊은 엄마가 잠든 아기를 돌보는 행복한 순간을 표현했죠. 아기의 요람에는 자수가 수놓아진 레이스 천으로 만든 커튼이 드리워져 있군요. 반투명한 레이스 커튼은 엄마와 아기가 겹쳐 보이는 효과를 두드러지게 해요.

엄마 뒤의 배경에도 요람과 비슷한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져 있군요. 또한 엄마의 왼팔과 잠든 아기의 오른팔을 보세요. 두 사람 다 똑같이 한 손을 들어 올려 팔꿈치를 구부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또 레이스 커튼이 엄마와 아기가 있는 실내 공간을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만드는 역할도 해요. 커튼과 레이스 주름의 경계는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요. 이 분홍색 부분 덕분에 회색과 노란색이 섞인 흰색, 그리고 검정 색조가 주로 쓰인 전체 그림이 생기를 띠죠.

작품 4 사진
작품 4 - 황선태, 빛이 드는 방, 2014년.

우리나라 작가 황선태의 작품 4에서는 커튼처럼 사용하는 블라인드(blind·창에 달아 볕을 가리는 물건)를 통해 신비로운 효과를 느낄 수 있어요. 빈방에 의자 한 개가 놓여 있는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매우 단순해 보여요. 색도 단 한 가지 초록을 사용한 데다 직선만으로 벽과 바닥 의자, 창문을 그렸거든요. 하지만 블라인드를 통해 실내로 스며드는 빛 덕분에 공간이 생기를 띠죠.

게다가 황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 4는 캔버스가 아닌 강화(强化) 유리에 그린 그림이에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빛을 투과시키는 '숨은 커튼'과 같은 역할을 한답니다.

황 작가는 강화유리 앞면은 샌딩(sanding)을 하여 표면을 흐리게 하고, 유리 뒷면에는 전사(轉寫)라는 프린트 기법을 이용해 초록색 선을 입혔어요. 강화 유리 뒤에는 흰 장막을 덧댄 후 LED 조명을 설치해 빛의 밝기·강도·위치를 조절했죠. 고요한 전시장에서 빛이 스며드는 이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은 명상을 하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고 해요.

커튼을 쓰는 이유는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조절하기 위해서예요. 때로는 바깥이 너무 춥고, 시리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지켜줄 커튼이 필요하지요. 가끔 힘든 날 나만의 자유와 편안함을 누리고 싶을 때는 마음의 커튼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커튼은 무엇인가요?

이명옥·사비나 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