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스페인 등 지배받았던 '신대륙 교통 요지'… 16세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입력 : 2016.04.21 03:09

파나마 비에호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파나마 문건)'가 최근 이슈가 됐어요. 파나마 법률 회사인 '모색 폰세카'가 40년간 세계 유력자들을 위해 세금이 매우 적은 지역에 서류상에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유령 회사)'를 세워 탈세를 하도록 도와줬다는 거예요. 앞으로 이 문제를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죠.

16~17세기 남미 거리, 건물 모습이 잘 남아 있는 파나마 비에호의 폐허 모습이에요. 파나마는 남미 교통의 중심지로 굴곡진 역사를 지녔답니다.
16~17세기 남미 거리, 건물 모습이 잘 남아 있는 파나마 비에호의 폐허 모습이에요. 파나마는 남미 교통의 중심지로 굴곡진 역사를 지녔답니다. /Corbis 토픽이미지
오늘은 파나마의 굴곡진 역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파나마는 국제 무역의 길목 '파나마 운하'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신대륙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필연적으로 파나마의 역사는 매우 다사다난했죠. 16세기 초반엔 스페인 지배를 받았고, 1821년 콜롬비아의 한 주로 편입되었어요. 이후 1903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지요. 이때 파나마는 미국에게 운하지대 영구조차권(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영토 일부를 빌려 계속 통치할 수 있는 권리), 치외법권, 무력간섭권 등을 넘겨줬죠. 고생 끝에 파나마는 미국이 85년 동안 독점한 파나마운하 운항권을 1999년 돌려받았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나마 비에호의 고고 유적과 파나마 역사지구'는 스페인, 프랑스, 초기 아메리카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 등이 남아 있어요. 파나마의 굴곡진 역사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지요. '파나마 비에호'는 파나마운하에서 동쪽으로 10㎞ 정도 떨어져 있는데,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가 1519년에 세운 도시예요. '옛 파나마'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는 아메리카 대륙 태평양 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이기도 하지요. 도시 전체가 격자형으로 설계돼 옛 유럽 계획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요. 이곳에는 16세기 당시의 거리와 광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훨씬 이전인 11세기의 유물도 일부 발굴되어 유적지로서의 가치가 탁월하답니다.

파나마 비에호
이곳에는 16세기에 건축된 자치의회 건물, 17세기에 세워졌지만 불타버린 성당 유적, 그 외에도 총독 사무실, 세관, 관청 등의 옛 건물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파나마 비에호의 거리와 광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유는 17세기 중반 이후 시민들이 신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가 버려졌기 때문이에요. 이 도시는 1621년 지진, 1644년 대화재, 1671년 해적의 침략으로 점점 파괴되고 황폐해졌어요. 급기야 시민들이 1673년 도시 일부를 불태우고 8㎞ 정도 떨어진 신도시 '카스코 안티구오'로 완전히 이주하게 되면서 파나마 비에호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답니다. 파나마 역사지구에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의 꿈과 열정이 깃든 역사적 장소인 '살롱 볼리바르'도 보존돼 있어요. 그는 아메리카 각국의 협력과 단결을 위해 범아메리카회의라는 기구를 만들려 노력했는데, 이를 위한 첫 집회가 열린 장소가 바로 '살롱 볼리바르'랍니다.

파나마는 신대륙의 교통 요지로, 강대국들에게 이권을 빼앗긴 아픈 역사가 있는 나라예요. 하지만 끊임없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로 주권을 회복하고,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2014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세계 여론조사 결과 '삶의 질(웰빙) 만족도'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기도 했답니다. 파나마인들이 긍정적인 성품을 유지해 앞으로 파나마가 더욱 발전하길 기대해봅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