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남과 북 이렇게 달라요] 정부에 불만 가진 주민… 김정은, '골칫거리 군인' 비유해 놀린대요

입력 : 2016.04.20 03:11

북한의 '블랙 유머'

독일은 1991년 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처럼 두 나라로 나뉘어 있었어요. 서쪽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독일을 서독이라고 하고, 동쪽에 있는 사회주의 독일을 동독이라고 불렀지요.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가 41년 지속되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경제는 파탄으로 치달았어요. 결국 서독이 독일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어요. 동독이 이미 사실상 붕괴한 상태였던 1989년에는 공산당 정권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블랙 유머(black humor·풍자와 냉소를 담은 섬뜩한 유머)'가 유행했다고 해요.

당시 동독에서는 북한의 김씨 정권처럼 장기 집권한 최고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를 두고 풍자하는 일이 상당히 빈번했어요. 예를 들면 "1912년에 일어난 인류의 재앙은?"이라는 질문에 '타이태닉 침몰, 알래스카 대규모 화산 폭발, 그리고 호네커의 출생'이라고 답하는 식이에요. 호네커는 재앙에 비교될 정도로 증오 대상이었어요. 하루는 동독의 한 성당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에 입 맞추고 있는 동독 천주교 신도에게 공산당 간부가 다가가 "동지는 호네커 발에도 입 맞출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대요. 그 신도는 "물론이지요. 호네커가 십자가에 매달린다면요!" 하고 대답했다고 해요.

북한 정권 지도부인 김일성, 김정은, 김정일(사진 왼쪽부터)이 뚱뚱한 댄서들의 몸에 합성돼 폐허가 된 시내에서 춤추고 있어요.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생활고에 관심이 없는 것을 풍자한 이 영상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북한 정권 지도부인 김일성, 김정은, 김정일(사진 왼쪽부터)이 뚱뚱한 댄서들의 몸에 합성돼 폐허가 된 시내에서 춤추고 있어요.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생활고에 관심이 없는 것을 풍자한 이 영상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유튜브 캡처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비판했어요. "동독 주민의 불만이 쌓이는 이유는?" "실험실에서는 보통 생쥐가 실험 대상으로 희생되는데, 동독 정권은 우리를 상대로 사회주의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 냉소적인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이유는 갈수록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과 사람들의 불만이 깊어졌기 때문이에요. 이런 유머가 나돌았을 때 동독의 사회 상태는 붕괴 직전이었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도 이와 같은 유머가 최근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말 한마디에 쥐도 새도 모르게 정치범 관리소로 끌려가는 북한에서는 동독에서처럼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대요.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요? 지난해 4월 북한군 권력 서열 2위였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불경죄'에 걸려 총으로 공개 처형 됐어요. 이 공개 처형 방식을 두고 친구끼리 약속을 잘 안 지키거나, 약속 시간을 안 지켜 늦게라도 올라치면 '너 총에 맞아볼래?' 하고 농담식으로 건네는 유머가 유행이라고 해요. 김정은을 조롱하는 유머는 지난 2011년 그가 갑작스럽게 후계자로 집권하자 등장하기 시작했대요. 군대 경험도 없고 나이도 어린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당 총비서 등 온갖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조롱하느라 "김정은은 횡포를 부리는 영예 군인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기 시작한 거예요. 북한에서 '영예 군인'은 상이군인(전투나 군사상 공무 중에 몸을 다친 군인)을 의미하는데, 북한군은 영예 군인에게 대중교통 우선 이용권과 전용 식품 상점 이용 혜택을 주지요. 문제는 권리를 넘어선 '영예 군인'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거죠. 하반신에 상처를 입은 영예 군인이 오토바이를 탄 채로 평양 시내를 마구잡이로 질주한 적이 있었다고 해요. 열차를 가로막거나, 보안원이 단속하면 영예 군인을 우습게 본다며 오히려 두들겨 패기도 한대요. 그래서 사회의 골칫거리로 인식된 이런 '영예 군인'들을 가리켜 북한 주민들은 '영예 강도' '영예 도둑'이라고 조롱하지요. 그만큼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라는 뜻이죠. 또한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했으니 국산이 아니라 외국산이다" 이런 식으로 돌려 비웃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발언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말이거든요. 김정은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북한 내부의 민심이 그만큼 흉흉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지영·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