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뜨거운 빨강, 차가운 파랑?… 마음 상태 따라 달라져요

입력 : 2016.04.15 03:09

색에서 따뜻하거나 차가운 느낌, 색채와 연결된 경험 때문에 일어나
연분홍과 하늘색, 편안함·안정감 줘…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색으로 뽑혀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후략)"

이해인의 '4월의 시'에 나오듯 최근 공원과 길에는 분홍, 노랑 그리고 연두색 등 봄이 뽐내는 자연의 색깔이 가득합니다. 색채는 우리 일상 주변에서 언제나 시선을 끌고, 감각을 자극하지요.

빨강은 따스한 피나 뜨거운 불을 떠오르게 하므로 따스한 기분이 들고, 파랑은 차가운 바닷물을 생각나게 하므로 시원한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색이 직접 온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의 감각과 마음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에요. 색채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이 색 그 자체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색이라는 것은 재료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태다"라는 심오한 말을 남겼다고 해요.

요즘엔 누구든 색연필이나 색펜으로 다양한 색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과거에는 오직 예술가만 다양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었답니다. 흙·돌·금속 같은 원료에서 천연염료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웠고, 힘들게 얻은 염료를 가지고 색을 입히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공 합성염료가 발명되면서, 새로운 색들이 쏟아져 나오듯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그 후 세계는 비로소 다채로운 색깔들을 갖추게 됐고요. 색으로 가득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colorful'은 19세기 후반에야 등장한 새로운 단어예요.

작품 1 - 모로소 디자인, Color completes furniture-가구로의 완성.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색, 다른 공간 이야기’
작품 1 - 모로소 디자인, Color completes furniture-가구로의 완성.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색, 다른 공간 이야기’

디자인에 색이 강조되기 시작해, 색깔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흰색 공간에 작품1처럼 발랄한 빨간색 소파나, 생동감 넘치는 오렌지색 의자를 놓는다면 어떨까요? 그 공간은 한결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바뀔 거예요.

요즘에는 유리, 천, 실, 나무, 가죽,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마다 적합한 색감을 살리는 디자인이 크게 유행하고 있답니다. 그러다 보니 색채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연구소들도 생겨났지요. 색 연구소로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에 있는 팬톤 색채연구소예요. 이 연구소는 새로운 색을 개발하고, 조금씩 차이가 나는 색깔들을 서로 구별해 모두 번호를 매겨 색상표로 정리해요. 또한 매해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색'을 선정해요. 2016년의 색은 연분홍·하늘색으로, 이 색들은 현대인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고 해요.

(사진 왼쪽)작품 2 - 앨리슨 앤슬럿, 팬톤 1895 C. (사진 오른쪽)작품 3 - 막심 닐로브, 팬톤 17-4530 TCX.
(사진 왼쪽)작품 2 - 앨리슨 앤슬럿, 팬톤 1895 C. (사진 오른쪽)작품 3 - 막심 닐로브, 팬톤 17-4530 TCX.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색, 다른 공간 이야기’

작품2를 보세요. 연분홍색 딸기 케이크 색상과 배경색이 똑같아 보이죠? 이 작품의 작가 앨리슨 앤슬럿은 음식의 색을 원래 존재하는 팬톤 색상표에서 찾아 완벽하게 일치시켰어요. 작품3은 막심 닐로브의 사진 작업인데, 사람들이 옷을 입는 규칙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랍니다. 작품 속 여성은 구름 같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군요.

봄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홍색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어요. 흰색에 가까운 옅은 분홍인 벚꽃, 딸기 우유 색깔과 비슷한 매화, 진분홍 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지요. 사람의 피부색은 어떤가요? 간혹 색연필 세트를 사면 '살색'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색연필이 들어 있을 때가 있지요.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의 피부 색깔이 똑같진 않아요. 사람마다 성격과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피부색도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작품 4 - 안젤리카 다스, 휴마네 프로젝트.
작품 4 - 안젤리카 다스, 휴마네 프로젝트.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색, 다른 공간 이야기’ 작품

작품4를 보세요. 사진가 안젤리카 다스는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백인과 흑인 등 성, 나이, 국적, 인종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동일한 색상지를 찾아 배경색으로 진열했답니다. 지구 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피부색이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다스의 작품에서 보듯, 살색은 결코 한 가지가 아니랍니다.

일상 속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가 다채로운 색으로 둘러싸여 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아름다운 봄 색깔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색깔과 관련되어 있는 과거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친구 또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색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색채 감상, 이렇게 해보세요]

1. 특정 색깔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2. 색채 디자인이 전체 공간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이야기해본다.

3. 유리·섬유·가죽·나무 등 바탕 재료가 다르면 같은 색을 사용할 때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이야기해 본다.(예시: 빨간색)

4. 각 나라나 문화마다 어떤 색깔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조사해보자.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