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봄 날씨에 스트레스 받은 개나리, 제일 먼저 폈다네
[식물이 꽃 피우는 원리]
날씨 변화에 스트레스 받는 식물… 일정한 시기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찬 곳서 번식력 좋아지는 보리 씨앗, 2차 대전 소련 식량난 해결 도움 줘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전국 각지의 산과 공원을 찾으면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를 비롯해, 진달래·개나리 등 다양한 봄꽃을 감상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한 남쪽 섬진강 유역은 말 그대로 꽃 세상이에요.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 십리벚꽃길에는 아름다운 벚꽃이 만발했고요. 섬진강 상류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자락은 활짝 핀 산수유꽃으로 노랗게 물들었어요. 강 하류 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나무도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렸죠.
식물은 제철을 맞으면 어김없이 꽃을 피웁니다. 초여름에는 조팝나무와 산딸나무가 함박눈을 뒤집어쓴 듯 흰 꽃을 흐드러지게 피울 겁니다. 가을이 되어 밤공기가 싸해지면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울긋불긋한 꽃을 피워 가을 들녘을 수놓겠지요. 대대로 식물이 일정한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식물이 때맞춰 꽃을 피우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죽기 전 후손 남기려··· 서둘러 꽃 피워요
식물은 동물이나 인간과 달리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요. 그래서 주변 환경이 변해도, 심각한 위기 상황이 닥쳐도 피할 수 없지요.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와 사시사철 변하는 기후는 식물의 생존을 항상 위협합니다. 그래서 식물은 기온과 햇빛이 갑자기 변하면 본능적으로 '죽을지 모른다'고 판단하고 목숨을 건 비상한 선택을 해요. '죽기 전에 빨리 후손을 남기자!'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들은 에너지를 꽃을 피우는 데 쏟아 어서 열매를 맺고 후손인 씨앗을 남기려고 하지요.
- ▲ 그래픽=안병현
스트레스를 이용해 꽃을 피우는 식물의 생장 원리를 식물학자들은 '스트레스 개화 이론'이라고 불러요. 최근에는 초미세 먼지로 인한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자 솔방울을 유달리 주렁주렁 맺는 소나무가 늘고 있다고 해요. 십중팔구 그 소나무는 환경 오염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후손을 남기려 안간힘을 썼을 거예요. 물론 개화시기 결정에는 스트레스뿐 아니라 80여 종의 유전자와 다양한 단백질 등이 관여해요. 과학자들은 각각의 기능을 따로 연구하고 있지요. 스트레스 개화 이론은 식물이 꽃을 피울 때 밟는 기본적인 원리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요.
봄꽃인 산수유·개나리·매화·목련은 기온 상승에 민감해 추운 겨울이 끝나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새잎이 돋기 전의 빈 가지에 서둘러 꽃을 피우지요. 특히 성급한 개나리는 동지섣달에도 며칠간 기온이 올라가면 제철을 잊고 꽃을 피운답니다. 여름에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산딸나무·이팝나무·조팝나무·쪽동백 등은 따가운 햇살과 강한 자외선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가을꽃인 들국화·코스모스는 기온이 떨어지고 햇살이 약해질 때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를 감지하고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개화하지요.
◇식물에 스트레스 줘서 식량난 해결하기도
지금까지 식물은 환경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빨리 자손을 남기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번에는 스트레스 개화 이론을 활용한 사례들을 알아볼까요? 2 차 세계 대전 때 식량난을 겪은 소련은 보리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발아한 보리 씨앗을 일부러 여러 주 동안 차가운 장소에 두었어요. 그러자 보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개화 호르몬이 활발하게 생성되었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결실을 많이 맺었다고 해요. 또 꽃집에서는 겨울에 개나리를 온실이 아닌 실외에 놔둔답니다. 개나리를 온실에 두면 봄이 와도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해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이지요
- ▲ 코스모스(왼쪽)는 기온이 떨어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을에 개화해요. 조팝나무(오른쪽)는 햇살이 강해지는 초여름에 스트레스를 받아 꽃을 피워요. /박중춘 제공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인간은 식물과 달리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서 외부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스트레스를 푸세요. 봄꽃이 가득 피어 있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