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그림 속에 또 그림이… 이야기 두 개, 재미도 두 배!

입력 : 2016.04.01 03:08

[액자 구조 그림]

작품 속에 또 다른 미술품 있어… 평면에 생동감 줄 뿐 아니라 흥미 유발하고 주제 강조
한 작품서 두 점 감상 가능해… 재미와 감동의 효과 더 커져요

시나 소설에서 커다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작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 플롯(plot·줄거리 구성)을 액자 구조라고 해요. 연극에서는 극중극(劇中劇)이라고도 하고요. 전체 주제 속에 삽입된 또 하나의 작은 주제는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많은 작가가 액자 구조를 애용했지요. 문호뿐만 아니라 미술가들도 액자 구조 그림을 즐겨 그렸어요. 오늘은 큰 그림 속에 또 다른 작은 그림이 나오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왜 이런 그림들이 그려졌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도록 해요.

미국의 화가 노먼 록웰은 관객에게 재치와 유머를 선물하려고 액자 구조의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 1에서 그림 도구를 어깨에 멘 젊은 남자가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고 있네요. 그림 가까이 돋보기를 대고 관찰하고 있는 이 남자는 미술평론가예요. 초상화 속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을 발견하고 돋보기로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죠. 재밌게도 비평 대상이 되는 그림 속의 부인이 이런 미술평론가의 행동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오른쪽 초상화 속 남자도 황당한 표정으로 미술평론가를 지켜보고 있어요. 마치 그림들이 "자네가 우릴 평가한다고?"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보여요. 미술관에 전시된 초상화 속 인물들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명장면이 연출됐네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작품으로 유명한 록웰은 액자 구도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어요.

[그림 1] 노먼 록웰, 미술 평론가, 1955년. [그림 2]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자화상, 1668~70년 추정. [그림 3]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년. [그림 4] 남경민, 신윤복 화방-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2012년.
[그림 1] 노먼 록웰, 미술 평론가, 1955년. [그림 2]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자화상, 1668~70년 추정. [그림 3]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년. [그림 4] 남경민, 신윤복 화방-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2012년.
그림 2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자화상이에요. 탁자 한편에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 붓 등의 그림 도구와 액자에 담긴 그림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이 실내 공간이 화가의 작업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타원형 액자 안에는 흰 레이스 깃을 단 셔츠와 검은 비단 조끼를 입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군요. 타원형 초상화 속 남자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무리요예요. 무리요는 왜 자화상을 그릴 때 액자 구조를 사용했을까요? 큰 그림 안에 작은 그림이 들어가는 액자 구조는 관객의 눈길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요. 특히 무리요의 그림에서는 타원형 액자가 주연을 맡고, 그 주변 배경은 조연 역할을 하고 있지요. 두 그림이 질서와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군요. 사각형의 큰 그림과 타원형 액자 그림을 대비시키면 자칫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평면에 변화와 생동감을 줄 수 있어요. 무리요는 관람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강조·변화 효과를 주기 위해 액자 구조를 선택한 것이죠.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 액자 구조를 활용했어요. 그림 3은 언뜻 유리 창문 밖 풍경이 보이는 실내를 그린 그림처럼 보여요.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 그림이 창문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젤 위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은 창밖 풍경과 복제된 듯 똑같지요. 이는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풍경인지 관객을 헷갈리게 해요. 마그리트가 이런 이상한 그림을 그린 이유는 우리에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가짜는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예요. 보통 사람들은 실제를 복제한 이미지를 실제로 착각하고 살아가요. 진품이 아닌 복제품을 진품으로 여기곤 하지요. 이 그림에서 창문 밖 실제 풍경은 진품,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은 복제품이에요. 마그리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속아 실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참되고 진실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기 위해 액자 구조 그림을 그린 거예요.

한국 작가 남경민은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존경하는 거장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자, 고전 명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도구로 액자 구조를 활용해요. 그림 4는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화방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그린 작품이에요. 어떻게 이 화방의 주인이 신윤복인지 알 수 있을까요? 책상 위에 그리다 만 신윤복의 풍속화 '연당야유도'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대표작 '미인도'가 걸려 있기 때문이지요. 남 작가는 한국미술사의 거장인 신윤복을 존경했다고 해요. 그는 신윤복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기 위해 신윤복의 화방을 그리고 그 속에 신윤복이 작업한 그림을 그렸어요. 남 작가는 "비록 시대와 공간이 다르고 만날 수도 없지만 대가의 화방 풍경을 그리며 그가 가졌던 꿈과 희망,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싶었어요"라고 밝혔어요.

고사성어 일석이조(一石二鳥)는 돌 하나를 던져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뜻이에요. 큰 그림 속에 작은 그림이 들어 있는 작품들은 주제도 전달하고 흥미도 일으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내지요. 게다가 한 점의 그림으로 두 점 이상의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와 감동을 준답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