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NIE로 언어 능력·창의력 쑥쑥… 같이 공부하며 더 가까워졌어요"

입력 : 2016.03.17 03:09

신문 활용해 손녀 공부시킨 73세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 꼭 훌륭한 수학자가 되어서 신문 1면에도 나올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 손녀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오늘 아침 소년조선일보 독자마당에 현서가 보낸 글이 실렸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전을 보고 와서 쓴 글이다. 내가 손녀에게 NIE(Newspaper In Education·신문 활용 교육) 교육을 시작하고 두 번째 시간 주제로 함께 미술관 현장학습을 갔던 것이다. 난생처음 신문에 글과 함께 사진까지 실렸으니, 현서의 기분은 지금 최고조에 달했다. 현서는 상기된 목소리로 당찬 꿈을 이야기했다. "그래, 할머니도 기쁘다. 꼭 기다릴게. 파이팅!" 벌써부터 보람을 느낀 교사로서, 나 또한 행복하고 흐뭇하다.

요즘 현서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어느 눈 오는 날엔 함께 동시를 쓰는데 "나무가 왠지 수학선생님처럼 느껴졌어요"하고 말했다. 현서는 지금 수학과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동은 다르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손녀들(맏손녀 9세·둘째 6세)이 3달 전부터 일요일마다 우리 집에 와서 NIE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18일과 25일 양일간, 조선일보사에서 실시한 시니어 NIE 교육을 받은 후부터다. '손녀들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심하던 때에 만난 NIE 교육은 두 노인이 사는 단조로운 집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해서 살뜰한 사랑 표현에도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 달려와 안기고 뽀뽀를 한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어머니 NIE가 무슨 교육인데요?" 일요일마다 애들 데리고 내가 NIE 교육시킨다고 했을 때 며느리가 한 질문이다. "193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신문 활용 교육'이다. 현서·윤서 가르치려고 조선일보에 가서 16시간 동안 지도법을 배우고 왔다. 읽기·쓰기·말하기는 물론, 사회를 보는 눈과 창의력도 향상된다고 한다." 각종 학원에 보내면서 그렇잖아도 시간이 부족한 아이한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 눈빛이다. "어머니가 옛날에 선생님이셨는데 뭘 걱정해…." 아들의 말에 안심한 며느리, 지금은 아이들 창의력이 향상된 것 같다며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아홉 살짜리 큰손녀를 데리고 첫 수업을 시작했다. '절대 욕심부리지 말고, 신문과 재미있게 놀게 한다.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한다. 아이가 하는 말을 최대한 많이 들어 주고, 존중한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시간은 20~30분으로 한다.' 내 나름대로 정한 규칙이다. 3달째 접어들면서 재미가 붙었는지 차츰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질문과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교재는 일주일 동안 본 신문 가운데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으로 정했다. 기사를 읽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NIE 노트에 이야기한 것을 순서대로 적고, 자신의 느낌을 간략하게 쓴다. 기사와 사진을 오려서 스크랩한다. 이제 스크랩북이 제법 두꺼워졌다. 뉴욕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기사를 선택한 날은, 미국에 사는 고종사촌 오빠가 생각나서 편지를 썼다. 현서는 할아버지 옆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국을 보다가 불쑥 "알파고 이길 인공지능 내가 만들 거예요" 한다. 그러더니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 기사를 집중해서 읽고 NIE 공책에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옆에서 구경만 하던 여섯 살짜리 동생 윤서도 "나도 NIE 하고 싶다"고 하자, 첫째가 스크랩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신문과 재미있게 놀면서 성장해 가는 손녀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아이들이 신문을 보고 추천하는 고궁이나, 음악회, 박물관, 미술관에도 갈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정태원·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