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의학이야기] 독감 치료, 일본군 만행 고발… 한국을 사랑한 의학자

입력 : 2016.03.09 03:16

[스코필드 박사]

1919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한국인 환자 치료에 적극 나서
일제의 탄압 고발하는 보고서와 3·1운동 사진 찍어 해외에 알리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앞장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인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919년은 의학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해라는 것 알고 계신가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 1918~1919년에 걸쳐 전 세계를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전세계 약 2000만명이나 됩니다. 웬만한 국가의 인구수에 달하지요.

3·1운동과 스페인 독감 대유행,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 외에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역사적 사건은 한 인물에 의해 연결됩니다. 바로 독립운동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박사입니다.

[의학이야기] 독감 치료, 일본군 만행 고발… 한국을 사랑한 의학자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출신 캐나다 이민자로 세균학을 전공한 교수였습니다. 캐나다에서 결혼하고 강의하던 그가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세균학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입니다. 1918년 가을, 스페인 독감이 시베리아와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도 유입됐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졌고, 스코필드 박사는 독립운동을 돕는 한편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며 숨 가쁘게 바쁜 삶을 살아요.

스페인 독감은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

세균학 박사였던 스코필드는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현미경으로 환자들의 피를 관찰했지만, 결국 그 원인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어요. 박사님은 왜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독감을 일으키는 원인균이 보통의 광학현미경으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박사님이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아직 바이러스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답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은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박테리아라고 하는 세균, 바이러스, 흔히 아메바라고 부르는 원충, 그리고 곰팡이죠. 여기서 바이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종류는 학교 과학실에 있는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어요. 그러나 바이러스는 워낙 작아서 수십만 배 확대가 가능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야 그 모습이 보여요. 전자현미경은 1930년대 이후 발명되었으므로 스코필드 박사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 세브란스 의전 교수 시절 스코필드 박사(뒷줄 중앙)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기념사진. 그는 3·1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독립지사입니다. /독립기념관
작디작은 바이러스는 아주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증식에 필요한 유전물질과 껍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전부죠. 바이러스에게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다른 세포 속에 기생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수를 엄청나게 불립니다. 즉, 숟가락 하나만 들고 이집 저집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양껏 먹고 다니는 무전취식자와 같은 존재지요. 바이러스는 더부살이하는 여러분의 몸이 건강하면 죽은 듯이 지내다가, 약해지면 다시 증식을 시작합니다.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렸을 때 앓았던 홍역과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감염 등 이런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세균으로 인한 질병의 경우 항생제라는 세균을 죽이는 약이 개발된 반면,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죽이는 약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현재로선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 백신 주사를 맞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신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모의 전투를 통해 미리 전술을 짜놓고 적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실제보다 훨씬 약하거나 아예 죽은 상태의 바이러스를 인체에 주사하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약한 바이러스와 싸우며 항체를 만들어 분비합니다. 거의 죽기 직전의 바이러스와 싸우기 때문에 우리가 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렇게 약한 적과 싸워 한 번 이기면, 나중에 강한 상태의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바로 항체가 나와서 너끈히 막을 수 있지요. 그래서 새로운 바이러스 질병이 등장하면 의학자들은 먼저 백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3·1운동의 증인, 스코필드 박사

스코필드 박사는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스페인 독감에 대한 논문을 써서 미국의 유명한 의학잡지에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연구실에서 논문만 쓰는 학자는 아니었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본의 고문과 3·1운동에 대한 보복행위를 고발하는 '제암리의 대학살 보고서' '수촌 만행 보고서'를 썼고, 3·1운동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인근 건물로 올라가 일본군이 만세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총·칼로 잔인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어요. 아직까지 남아있는 3·1운동 초기의 몇 안 되는 사진들은 그가 찍은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이 사진들을 비밀리에 해외에 보내 언론에 투고했고, 독립을 향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망과 일본의 잔혹한 진압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박사님의 활동 때문에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는 처지에 놓였고, 이후 조선에 대한 통치 방식도 표면적이나마 온건하게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스코필드 박사님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불의에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인석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의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