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상식을 파괴한 예술가… 세계 최초 인공위성 생중계로 신년 축하를
타계 10주기 맞은 천재 예술가 백남준
금세기 예술사에 워낙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까닭에 올해 세계 각지에서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많아요. 추모 행사 때마다 백남준에게 붙는 수식어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상식을 파괴한 괴짜'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이며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등이 있지요. 백남준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충격을 몰고 온 인물이었는지 상상이 되지요?
백남준은 관습을 거부하는 새로운 예술에 심취했어요. 실험 정신이 가득했던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1958년 그의 스승이자 현대 음악가인 존 케이지와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더욱 꽃이 피지요. 당시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제목의 음악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연주자가 4분 33초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퇴장하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었어요. 이 파격적인 공연을 관람한 백남준은 자신의 공연에 동양의 선불교와 공(空) 사상을 접목시키고, 존 케이지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어요. "내 삶은 1958년 8월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됐다. 그(존 케이지)를 만나기 전해인 1957년은 내게는 기원전(B.C) 1년이다." 그 후 1963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비디오 아트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되지요.
- ▲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왼쪽)은 창의력, 상상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위대한 천재였어요. 지난 2007년 타계 1주기 때는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대표작 ‘다다익선’ 앞에 추모 장소가 마련되기도 했지요(오른쪽). /사진작가 이은주 제공
1984년 1월 1일 미국, 백남준이 기획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신년 축하 방송으로 방영됐어요. 이 작품 속에는 백남준이 직접 등장해 "안녕? 오웰. 너의 예언은 틀렸다. 발달된 과학기술이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선언해요. 그리고 프랑스 파리·미국 뉴욕 등지에서 동료 예술가들의 펼치는 퍼포먼스 생중계가 이어지지요. 첨단 위성 통신 기술을 이용해 수많은 예술가가 신년 축하 방송을 한다는 그의 발상은 매우 독창적이었고 신선했답니다. 그런데 백남준이 '굿모닝' 인사를 건낸 오웰은 누구일까요? 그는 작가 조지 오웰로, '1984'이라는 소설에서 텔레비전 등 기술 발달과 전체주의의 위험으로 미래 끔찍한 세상이 닥칠 것이라 예측했어요. 백남준은 조지 오웰이 예상한 것보다 낙관적인 세상을 축하하려했던 것 아닐까요?
백남준은 금기에 대항하는 파격적인 행위예술로 센세이션(Sensation·돌풍)을 불러일으키며 평생을 살았어요. 10년 전 백남준의 장례식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답니다. "고인은 평범한 장례식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백남준의 조카 켄 백 하쿠다씨가 발언하자, 존 레논의 부인이자 현대미술가인 오노 요코 여사가 미리 계획한 대로 하쿠다씨의 넥타이를 잘랐어요. 그리고 조문객 모두가 가위를 나눠 받아 서로 넥타이를 자르며 백남준을 추모했지요. 과거 백남준이 공연을 하다가 돌연 무대 위에서 뛰어 내려와 객석에 앉아 있던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싹둑 자른 것을 재연한 것이었어요.
현대에는 백남준과 같은 천재, 장인들이 세상 각 분야의 발전을 이끈답니다. 그런데 백남준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지금 같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어요. 제2의 백남준이 나타날 수 있도록,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면 그 노력을 잘 인정해주는 여건 또한 조성되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