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단군신화 처음 담은 역사서, 상상력 보물창고네?

입력 : 2016.02.25 03:08

[삼국유사]

정통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고대국가들의 흥망성쇠·설화 다뤄
잊고 사는 삶의 가치 깨닫게 해… 새로운 창작의 원천 될 수도

얼마 전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판본이 경매에 나왔다가 문화재청 조사 결과 1999년 신고된 도난품으로 확인돼 출품 취소가 된 일이 있었어요. 취소 되기 전 경매 시작가는 무려 3억5000만원이었답니다. 경찰은 현 소장자가 이를 입수하게 된 과정 등을 조사하고 있어요.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은 새삼 '삼국유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삼국유사'는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진 문화재랍니다.

공식 역사서 '삼국사기'와 달라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의 유사(遺事·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혹은 남겨진 일)를 모아 편찬한 책으로, 1281~1283년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삼국유사'와 함께 같은 삼국시대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삼국사기'가 있어요. '삼국사기'는 '삼국유사'보다 140년 앞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왕명으로 편찬했지요. 즉 '삼국사기'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고려 정부가 공식적으로 편찬한 정식 역사서라고 할 수 있어요.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설화, 삼한·부여·가야의 흥망성쇠, 발해·후삼국에 대한 기록을 단편적이지만 빠짐없이 다뤄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서로를 보완하는 의미가 있지요. 특히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최초로 수록되어 있답니다.

[고전이야기] 단군신화 처음 담은 역사서, 상상력 보물창고네?
/그림=이병익
"단군왕검은 중국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 (중략)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서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연오랑세오녀 설화' '조신 설화' 등 수십 편의 설화가 실려 있어요. '삼국유사'에는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 등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셈이지요.

◇옛사람들의 삶·죽음에 대한 성찰도 엿볼 수 있어


그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서동요'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등 신라 향가 14수는 국문학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져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생사 길은 / 여기 있음에 두려워하여 // 나(죽은 누이)는 간다 말도 / 못 다 이르고 가는가?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 한 가지(같은 부모)에 나고 / (네가) 가는 곳 모르는구나 // 아으, 미타찰에 만날 나 / 도(道) 닦아 기다리련다."

이 '제망매가(祭亡妹歌·죽은 누이를 기려 지은 노래)'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추모하며 지은 작품이에요. 같은 가지에서 난 잎이 이른 바람에 떨어져버리듯,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누이동생이 젊은 나이에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고 표현했지요. 그런데 화자는 인생의 허무함에 좌절하기보다, 여동생과 극락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어요. 그리고 도를 닦겠다는 다짐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요. 우리는 이 향가를 통해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옛 선인들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어요.

'조신의 꿈' 설화도 인간의 욕망이 한낱 꿈과 같이 헛된 것임을 보여줘요. 아름다운 여인을 사모하던 주인공 조신은 꿈속에서 그 여인과 결혼하지만, 소원을 성취한 뒤 오히려 더 감내하기 어려운 불행을 겪고 꿈에서 깨지요. 이 설화는 물질적인 욕망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우리는 영원할 수 없는 인생을 살면서도 헛된 욕망에 빠져 현재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마저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제망매가' '조신의 꿈'을 읽으면 인간의 유한한 삶과 죽음과 욕망, 집착이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사색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수많은 정보와 자료를 있는 그대로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수백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삼국유사'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가 옛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요.

◇역사적 객관성 떨어진다는 지적도

'삼국유사'가 역사적 사실과 객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논쟁도 있답니다. 하지만 700여 년 전 우리 조상의 상상력이 담긴 몇 안 되는 사료라는 점에서 '삼국유사'는 여전히 중요해요. '삼국유사'에 실린 신화, 전설, 민담 등의 다양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갖게 해줘요. 알에서 태어난 주몽 이야기나 현실과 꿈을 왔다 갔다 하는 조신의 이야기는 영화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으로 써도 될 정도로 흥미롭지요. '삼국유사'의 가치는 우리가 얼마큼 소중하게 읽고 살펴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고전에 숨어 있는 오래된 보물들을 찾아보세요. 우리에게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일연
[이 책의 작가는?]

일연(1206~1289)은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로, 보각국사라고도 불리어요.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지금이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절인 무량사에 들어가서 학문을 닦게 돼요. 1227년 승과에 급제한 뒤, 독실하게 수행하며 폭넓은 학문을 쌓아서 나라에서 인정받는 고승이 됐어요. 또한 '삼국유사'를 비롯해 일생에 책 100여 권을 쓴 역사가랍니다.

조승희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