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두 블랙홀 충돌 직전 0.15초… 시공간이 '울렁'

입력 : 2016.02.23 03:07

[100년 전 아이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 발견]

우주서 끊임없이 중력파 있었으나 파동 미세해 100년간 관측 실패
거대한 두 블랙홀 충돌하면서 발견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중력파… 일정한 속도의 빛 이용해 관측 성공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동요 '퐁당퐁당'의 노랫말처럼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멀리 퍼져나가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미세한 파장이 호수의 가장자리까지 퍼진답니다. 호수에 물결파가 있다면 우주에는 중력파가 있습니다. 두 블랙홀의 결합 같은 강력한 우주 현상이 발생하면, 거대한 중력이 파동처럼 전(全) 우주로 퍼지는 것이지요. 1916년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했어요. 하지만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해내진 못했죠.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2월 12일(한국 시각) 미국, 한국, 독일, 영국 등 13개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과학자가 드디어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했어요. "우리가 중력파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중력파란 우주의 변화 알게 하는 신호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했어요.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사과와 지구가 서로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라는 법칙이에요. 뉴턴이 중력에서 힘의 작용을 추리한 덕분에 후대 과학자들은 그전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물리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재미있는 과학] 두 블랙홀 충돌 직전 0.15초… 시공간이 '울렁'
/그래픽=안병현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따라 구부러질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해 우리의 시야를 한 차원 더 넓혔지요.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평평한 고무시트의 예를 들었어요. 사각형 형태로 같은 높이의 기둥 네 개를 세우고, 평평한 고무시트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 고무시트 위를 가벼운 개미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가로질러 걷는다면 시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겠죠. 그런데 시트 위에 무거운 쇠구슬을 얹는다면 쇠구슬이 놓인 자리가 움푹 들어갈 거예요. 질량이 공간을 뒤튼 것이죠. 개미가 휘어진 고무시트 위를 가로지른다면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에 드는 시간도 더 늘어날 거예요. 질량이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뒤틀게 만들었다는 의미랍니다. 쇠구슬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바꿔 말해 중력이 커지면 개미에게는 뒤틀어진 공간과 시간이 커질 수 있어요.

고무시트에 쇠구슬이 떨어지면 냇물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힘의 파장이 고무시트 가장자리까지 퍼져나가요. 이처럼 질량이 변했다는 신호가 우주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 중력파랍니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불과했던 중력파의 실체를 확인한 이번 발견은 우주 천체의 질량 변화를 알아차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죠? 이는 과학이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중력파 발견은 때마침 일어난 블랙홀 충돌 덕분

100년 만에 중력파 관측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연과 행운도 따랐어요. 중력파를 관측한 과학자들은 "0.15초 사이에 두 블랙홀이 충돌해 만든 사건"이라고 발표했어요. 찰나의 순간에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퍼즐이 맞혀진 거죠.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한 초대형 사건이 있었어요. 태양 질량의 36배인 블랙홀과 29배인 블랙홀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태양 질량의 62배인 블랙홀이 만들어졌거든요. 이 과정에서 태양 질량의 3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중력파로 발산됐지요(36배+29배-3배=62배).

밤하늘의 별도 사람처럼 수명이 있어요. 갓 탄생한 어린 별들은 핵융합이 활발해 파란색으로 빛나고, 수명을 다한 별들은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서 상대적으로 차가워져 빨간색 파장의 빛으로 빛나요. 수명이 다해가는 별들은 갖고 있던 수소 원자를 모두 태워 핵을 헬륨 원자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부피가 커져요. 부피가 커져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별은 풍선처럼 폭발해요. 별은 사라지지만 작용하고 있던 중력은 에너지의 형태로 우주에 퍼져나가요. 바로 중력파지요.

행성의 폭발뿐 아니라 중력이 변하는 모든 천체에서 중력파가 발생하지만, 그 힘은 측정하기에 너무 적어요.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측했을 때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이유는 평소에 발생하는 중력파가 미세하기 때문이었죠.

빛을 이용해 중력파 검출하다

연구진은 어떻게 중력파를 확인했을까요? 중력파는 다른 물질과 상호 작용하지 않고 오로지 주변의 시공간을 변형시켜요. 그래서 연구진은 언제 어디서나 광속으로 직진하는 빛을 이용해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갈 때 공간의 길이가 변화하는 정도를 측정했어요.

이번 연구에 사용된 장치는 한 변의 길이가 4㎞인 'ㄴ'자 모양의 진공터널로 이뤄져 있어요. 먼저 두 개의 터널이 직각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항상 일정한 속도를 가지는 레이저 빛이 발사돼요. 발사된 레이저는 빛 분배기에 의해 두 개로 쪼개져 양 터널 끝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돼 되돌아와요. 거울에 레이저를 비추면 반사되는 놀이를 떠올리면 쉽지요.

양 터널에서 되돌아 나올 때의 빛의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두 터널의 길이가 같고 빛의 속도는 일정하지요. 따라서 두 빛을 겹쳤을 때 아무런 신호도 검출되지 않는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중력파가 지구를 통과했기 때문에 시공간의 뒤틀림이 발생했고, 그 공간의 길이 변화만큼 빛의 진행거리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두 빛을 겹쳤더니 미세한 진동 변화가 검출된 거예요.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터널의 길이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진은 지진과 중력파를 구분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 2개의 중력파 검출기를 동시에 가동했답니다. 덕분에 중력파가 남반구에서 북반구 쪽으로 올라왔다는 것까지 밝혀낼 수 있었지요.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