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화려하게 때론 긴장하게… 해님도 이 능력은 없을걸?

입력 : 2016.02.05 03:09

[미술에 쓰인 인공조명]

극적인 표현과 감정 전달에 좋아… 관객을 작품에 집중하게 만들어
이정록의 '나비'에선 자연광과 조화… 달빛보다 가로등 빛 낫다는 작품도

빛은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예술가들은 예로부터 자연조명인 햇빛과 인공조명인 양초·램프·전등 빛을 창작의 도구로 활용했어요. 특히 제2의 빛으로도 불리는 인공조명은 마치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실험 도구처럼 미술 분야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답니다. 인공조명은 화면 등 다양한 소재에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거나, 그림 속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지요.

작품1 - 조지프 라이트, 천구의를 가지고 강의하는 학자, 1766년. 작품2 - 자코모 발라, 가로등, 1909년. 작품3 - 댄 플래빈, 무제, 1971년. 작품4 - 이정록, 나비 연작, 2015년.
작품1 - 조지프 라이트, 천구의를 가지고 강의하는 학자, 1766년. 작품2 - 자코모 발라, 가로등, 1909년. 작품3 - 댄 플래빈, 무제, 1971년. 작품4 - 이정록, 나비 연작, 2015년.
인공조명을 일찍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화가는 18세기 영국 화가 조지프 라이트입니다. 작품1의 인공 빛을 보세요. 마치 연극 무대 위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 한가운데 서 있는 붉은 옷을 입은 과학자와 과학 기구가 있는 곳을 강하게 비추고 나머지 배경은 짙은 어둠 속에 감췄어요. 자연의 태양광으로는 낼 수 없는 특수 효과지요. 과학자가 선보이고 있는 기구는 천구(天球·천체 관측에 사용되는 가상의 둥근 우주 공간) 모형이에요. 천구를 둘러싼 복잡한 곡선은 황도(黃道·관측자 입장에서 바라본 천구상의 태양 궤도)와 적도랍니다. 그 속에는 항성과 별자리 모형도 있네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과학자를 집으로 초청해 과학 실험을 감상하고 강의를 듣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초기 산업혁명을 이끈 당시 영국의 과학자·발명가·사업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이 작품을 그린 라이트도 과학 강의를 즐겨 들었다고 해요. 라이트는 인공조명을 그림에 활용하면 특별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진작에 알았어요. 작품1처럼 인공조명은 생생한 입체감을 만들어 관객의 눈을 그림에 집중시킬 수 있답니다. 인공조명을 활용한 명암 기법으로 과학 실험을 보여주는 장면의 현장감, 열기, 호기심을 그림에 표현할 수 있었지요.

20세기 이탈리아 화가 자코모 발라에게 인공조명은 현대성과 기술 문명을 의미했어요. 작품2는 도시의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을 그린 거예요. 가로등 불빛이 마치 태양빛처럼 강하고 빠르게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죠? 발라가 눈부신 빛을 발하는 초강력 가로등을 그린 이유는 현대 기술의 상징인 전기에너지를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등의 발명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습관을 바꿔버렸어요. 밤늦도록 일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고 가게도 밤늦게까지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어요. 또 낮에만 볼 수 있었던 스포츠 경기를 밤에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죠. 전기를 이용해 만들어 낸 빛의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한 발라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과학기술을 찬양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지요. 작품2의 오른편 위에 초승달이 보이지요? 초승달은 자연을 상징해요. 발라는 기술의 상징인 전등과 자연의 상징인 달을 대비시켜 과학기술이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죠.

미국의 작가 댄 플래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형광등을 사용해 미술 작품을 만들었어요. 신비한 빛을 발하는 작품3은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파란색과 빨간색 형광등을 조합해 만든 겁니다. 표준 형광 튜브로 만든 이 실험적인 작품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어요. 형광등 자체가 새로운 미술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을 이전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재료로 색깔 있는 형광등을 선택한 까닭은 빛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과 빛이 색에 미치는 효과를 탐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인공조명을 순수 미술과 결합한 댄 플래빈은 라이트 아트(Light Art)를 대표하는 작가예요. 1960년대 시작된 라이트 아트는 자연 빛이나 인공 빛의 효과를 탐구하거나 이를 표현 재료로 이용한 작품을 의미하지요.

한편, 한국의 작가 이정록은 자연 빛과 인공 빛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듭니다. 작품4에서 반딧불이처럼 빛을 발하며 숲 속을 날아다니는 신비한 물체는 나비를 본뜬 인공 나비예요. 작품 속 나비는 현실 세계와 영원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존재예요. 작가는 이 나비에게 신성한 빛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신만의 촬영 기법을 개발했지요.

먼저 자연광이 비치는 환한 낮에 제주도 한라산 깊은 숲 속에서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 숲 풍경을 촬영했어요. 그 후 조리개를 계속 열어둔 상태로 카메라를 암막 천으로 덮었어요. 어두워진 뒤 미리 인공 나비를 설치해둔 다른 장소로 가서 카메라에 덮은 암막 천을 걷어내고 반복적으로 플래시나 스트로보(외장 플래시)를 터트렸어요. 그러면 인공 나비들이 플래시 빛을 받아 반짝거린답니다. 이때 보통 200~300번이나 플래시를 터트린다고 해요. 이렇게 하면 자연광으로 촬영한 배경에 인공조명으로 촬영한 나비를 합성할 수 있답니다. 작가는 빛의 세기나 색감, 위치 등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지요. 그 결과 자연 빛과 인공 빛이 함께 어우러져 이토록 신비한 풍경 사진이 태어나게 된 거예요.

우리는 빛을 '생명의 빛'이라고 부릅니다. 빛이 없다면 지구 상의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빛을 표현한 작품들을 감상하니, 예술 세계에서도 빛이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