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멋진 모습 보이고파… 옆으로 앉아 연주하게 됐죠

입력 : 2016.01.22 03:08

[피아니스트의 자리]

오른쪽 얼굴 잘 보이려는 의도로 피아노 위치 제안한 '두세크'
소리 전달 좋아 지금까지 오른쪽 배치

역사와 전통 따라 바뀐 현악기 위치… 최근엔 상황별로 악기 배치 선택해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음악가들이 등장하는 음악회는 누구에게나 동경과 설렘을 불러일으키지요. 음악회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훌륭한 작곡가들의 걸작을 감상하기 위해서이지만, 정작 음악회를 구성하는 요소 중 작곡가나 연주자만큼 중요한 분들이 있죠. 바로 여러분, 청중입니다. 청중의 우렁찬 박수갈채는 언제나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로 향하는 연주자들에게 큰 힘이자 응원이 되어준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저도 무대에 서면 항상 긴장하곤 합니다. 그때 여러분의 표정이나 눈빛을 바라보면 저절로 힘이 솟곤 하는데요,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청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피아니스트는 건반 앞에 앉아서 청중들에게 옆모습, 그것도 오른쪽 옆모습만을 보인 채로 연주합니다. 문득 의문이 생기네요. 도대체 피아니스트는 언제부터, 왜 옆으로 앉아 연주하게 되었을까요?

일반적으로 피아니스트는 오른쪽 옆얼굴이 관객 쪽에서 보이도록 앉아요. 이렇게 하면 피아노의 뚜껑이 관객 쪽으로 열려 소리 전달이 잘된답니다(위쪽). 다른 악기들과 협연하며 피아노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앉기도 해요(아래쪽).
일반적으로 피아니스트는 오른쪽 옆얼굴이 관객 쪽에서 보이도록 앉아요. 이렇게 하면 피아노의 뚜껑이 관객 쪽으로 열려 소리 전달이 잘된답니다(위쪽). 다른 악기들과 협연하며 피아노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앉기도 해요(아래쪽). /플리커·위키피디아
피아노는 서양 음악 역사에서 비교적 나이가 어린 악기랍니다. 이제 삼백 살이 조금 넘었으니까요. 물론 친척뻘로 클라비코드, 쳄발로 같은 선배 건반악기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주로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합주를 많이 했으니까 독주를 위한 악기 배치나 연주자의 자리 등을 고민하게 된 것은 피아노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말 피아노가 유럽 귀족들의 살롱과 음악회에서 중심 악기가 되면서 피아니스트가 앉는 자리를 고정시킨 최초의 인물은 체코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얀 라디슬라프 두세크(Jan Ladislav Dussek· 1760-1812)랍니다. 이분의 이름, 어딘지 친숙하지 않으세요? 맞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소나티네' 앨범, 그 안에 두세크의 작품도 들어 있어요. 두세크는 작곡도 잘했지만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전 유럽에 걸쳐 연주 여행을 펼쳤는데요, 젊은 시절 그는 모든 연주자가 골머리를 썩이던 피아노의 자리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습니다. 정면으로 청중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등을 보이며 연주할 것인가? 두세크는 객석에 피아노의 오른쪽 옆면을 보이도록 앉는 방법을 제안했고, 두세크의 방법이 제일 적합한 것으로 굳어졌어요. 이렇게 앉으면 피아노의 뚜껑, 즉 열었을 때 공명판 역할을 하는 커다란 지붕 같은 판이 객석을 향해 열리게 되어 소리의 울림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답니다. 지금은 이 배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당시 두세크의 발상은 상당히 기발했답니다. 하지만 정작 두세크의 속마음은 다른 데 있었죠. 미남이었던 그는 특히 오른쪽 옆얼굴이 잘생겼었는데, 청중에게 자신의 외모를 과시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것입니다. 피아노의 자리 배치를 고정시킨 다음 두세크의 인기가 더 올라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물론 이 방향은 피아노 독주를 할 때나 일반적인 협주곡에서의 방법이고, 피아니스트가 솔로 연주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겸해서 협주곡을 이끌 때는 청중에게 등을 보이고 앉기도 합니다.

두세크
두세크
여러 악기가 합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작고 섬세한 소리가 객석 가까이에 앉고, 강한 소리는 더 멀리 앉아야겠지요. 그래서 지휘자가 바라보는 정면에 목관악기, 그 뒤로 금관악기, 맨 뒤로 타악기가 배치되는 방식이 일반적이랍니다. 목관악기보다도 앞쪽에 앉는 현악기들의 배치는 좀 더 복잡하고 역사와 전통, 지휘자의 의견에 따라 변화가 있어왔습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배치 방법은 지휘자를 기준으로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그 뒤 더블베이스 순으로 앉는 '미국식' 스타일입니다. 바이올린 파트는 역할에 따라 두 팀으로 나뉘기 때문에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그룹이 구별되지요. 19세기 후반부터 내려오는 조금 오래된 방식은 '유럽식'이라고 부르는데요.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첼로-비올라-제2바이올린 순으로 앉고 더블베이스가 첼로 뒤에 배치돼요. 미국식 배치에 현악4중주(네 대의 현악기로 연주하는 것·보통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와 첼로 각각 한 대) 배치를 적용한 절충안도 있어요. 이 경우는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첼로-비올라 순입니다. 배치 방식의 명칭은 '미국식' '유럽식' 등 나라·대륙 이름에서 따왔지만 꼭 오케스트라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르게 앉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음반을 녹음할 때 마이크의 위치, 공연할 음악회장의 음향, 지휘자의 선택, 각 오케스트라의 개성이지요. 요즘엔 상황별로 적합한 악기 배치 방식을 선택한답니다.

결국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연주를 위한 '자세'이겠죠. 어떤 자리에 있든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그 열정과 노력은 반드시 객석에 앉아 있는 청중에게 온전히 도착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