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아이슬란드와 영국, 대구 놓고 세 차례나 전쟁 벌였어요

입력 : 2016.01.21 03:08
북유럽 지도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제주도 주변 바다의 수온이 지난 16년간 1.3도 높아졌다고 해요. 온난화와 엘니뇨의 영향 때문이지요. 최근 한반도 해역에서는 찬물에서 사는 대구·명태·꽁치·정어리보다는 따뜻한 물에 사는 오징어·해파리가 많이 잡히게 됐대요. 찬물에 사는 생선의 감소 현상은 전 세계적인 문제예요. 특히 유럽에서는 주요 식량인 대구가 줄어들어 고민이 많아요. 미국 메인만 연구소에서는 대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한때 많이 잡혀 소중한 식량이 되던 대구는 다 어디로 간 걸까요?

10세기 무렵, 대구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바이킹들이었어요. '토르발드'라는 바이킹은 사람을 죽이고 노르웨이에서 쫓겨나 아이슬란드를 개척했지요. 그의 아들 '붉은 머리 에이리크(Erik the Red)'도 살인죄로 쫓겨나 그린란드를 개척하지요. '붉은 머리 에이리크'의 아들인 '레이프 에이릭손'도 새 땅을 목격했다는 보고를 듣고 탐험을 떠났고, 북아메리카 대륙의 빈랜드에 도착했다고 해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알려진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셈이지요. 바이킹의 모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튼튼한 배와 말린 대구였어요. 대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은 거의 없는 흰 살 생선으로 찬 바람에 말리면 무게가 5분의 1로 줄어들면서 널빤지처럼 딱딱해져요. 말리면 잘 썩지 않아 오래 보관이 가능하고, 항해를 하다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유용한 식량이죠. 찬물을 좋아하는 대구는 노르웨이·아이슬란드·그린란드·아메리카 대륙 근처 찬 바다에 떼 지어 살았어요. 바이킹의 항로가 대구 어장과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겠죠?

16세기 벨기에의 생선 가게에서 대구를 파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에요. 대구는 유럽 전역에서 널리 소비되는 생선이었답니다.
16세기 벨기에의 생선 가게에서 대구를 파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에요. 대구는 유럽 전역에서 널리 소비되는 생선이었답니다. /위키피디아

16세기엔 대구 어장을 찾아 뛰쳐나온 탐험가들로 바다가 북새통을 이뤘죠. 17세기 미국에서는 청교도들의 대구잡이가 활발해, 대구를 팔아 벼락부자가 된 '대구 귀족'까지 생겼지요.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증기로 움직이는 대구잡이 배가 등장했어요. 19세기에는 바다 밑바닥까지 훑으면서 싹쓸이하는 저인망 어선이 만들어졌고요. 20세기가 되면서 위치추적기를 단 냉동선도 만들어졌죠. 무분별한 대구 남획이 계속되었고, 기후변화로 바닷물마저 따뜻해지자 대구의 씨가 마르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3차례 대구 전쟁으로 잠시 국교를 단절하기도 했어요. 1944년 덴마크에서 독립한 아이슬란드는 자원이 거의 없어 어업이 국민의 생계 수단이었거든요. 당시에는 바다에 주인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외국 배들과 끊임없이 분쟁해야만 했지요. 포탄이 오가고 사상자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자, 자기 나라 근처 200해리(약 370㎞)의 바다에서 다른 나라의 어업 활동을 막는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EEZ) 제도가 생겼답니다.

최근 북대서양 인근 나라들은 대구잡이를 제한하고 치어(稚魚·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물고기)를 방류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국민 생선 명태도 무분별한 고기잡이로 사라지고 있는데요. 식탁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 봅니다.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