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의학이야기] 몸뿐만 아니라 뇌·신경세포까지 다쳐요

입력 : 2016.01.13 03:10

신체·정신적 학대받은 아동 뇌는 감정과 학습 관여하는 '해마' 위축
자율신경도 망가져 항상 긴장 상태… 어른 돼서도 마음의 상처 지속돼요

성탄절이 있었던 지난달 전 국민이 분노한 아동 학대 사건이 있었어요. 인천 연수구의 한 수퍼마켓, 한겨울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맨발에 반바지 차림의 여자아이가 들어왔어요. 아이가 학대받았을 것이라 짐작한 수퍼마켓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죠.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 아이는 2년여간 집에 감금된 채 상습적으로 맞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대요. 또한 발견 당시 갈비뼈에 금이 간 데다 영양실조·빈혈·간염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였고, 아버지에게 돌려보낼까 봐 불안감도 컸다고 합니다.

아동 학대는 과거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때에도 심각했어요. 작은 어린이를 굴뚝 안으로 집어넣어 온갖 먼지와 재, 그을음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들이마시면서 청소하게 했지요. 아직도 지구촌 여러 곳에선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나이에 하루 종일 고사리손으로 양탄자를 짜는 등 고된 일을 하는 아이가 많아요. 다행히 우리나라에선 어린이 노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학교에도 못 가고 공장에서 강제로 일하는 어린이는 없어요.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맞거나 굶는 유형의 학대는 적지 않아요. 슬프게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부모가 학대를 하는 경우가 81.8%로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요.

몸보다 마음에 입는 상처가 더 커

학대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지요. 폭행을 당한 아이들의 몸은 멍이 들거나 골절 되고, 심하면 간이나 비장과 같은 장기가 파열되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요. 아이를 굶겨 성장해야 할 나이에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하면, 신체 각 부분의 발육이 미뤄져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상태가 되는 발달 지체가 나타나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안병현

그런데 신체적 학대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서적 학대 혹은 신체적 학대에 따른 정신적 충격이랍니다. 사실 신체적 학대의 결과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학대당한 아이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잘 아물지 않고 성장 과정에도 계속 악영향을 줘요. 특히 아동기는 뇌의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시기예요. 학대를 받으면 지능 발달이 느려질 수도 있어요. 언어 발달이 지체되면 다른 사람과 말하고 소통하는 데 문제가 생겨요. 또 열등감으로 위축되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지고요.

학대받은 어린이들의 뇌에는 여러 생물학적 변화가 와요. 뇌가 쪼그라들어 부피가 감소하거나, 뇌파검사에서 비정상적인 소견이 나타나지요. 특히 우리 뇌의 깊은 곳에 있는 해마라는 부분이 위축돼요. 바다에 사는 작은 동물인 해마처럼 생겨 같은 이름이 붙은 뇌 속 해마는 정서나 감정 조절, 학습, 기억에 깊이 관여해요. 따라서 해마가 작아지면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특히 기억력이 떨어져서 공부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답니다. 사실 해마가 위축되는 것은 노인들이 주로 걸리는 치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이의 뇌가 학대로 치매 환자의 뇌처럼 변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죠.

학대 피해 아동 특성 정리 그래프
또 우리 몸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자율신경이 있어요. 자율신경은 스트레스와 외부의 위협에 대해 몸이 자동 반응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요. 긴장하면 심장이 빨리 뛰거나 땀이 나는 것도 다 자율신경 덕분이에요. 자율신경은 우리 몸의 경보 시스템인 셈이죠. 그런데 학대받은 아이들은 이 자율신경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별것 아닌 외부 자극에 대해서도 과도한 반응을 일으키지요.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것과 같은 몸 상태가 되는 거예요.

놀거나 쉬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학대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흔히 겪는 학대도 있어요.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거나 쉬지 못하고 늦은 밤까지 학원을 전전하거나 과외 선생님에게 붙잡혀 있는 거 말이에요. 사실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어린이 학대라고 볼 수 있어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에요. 유엔이 정한 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에게 충분히 놀고 쉴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이런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운동 시간과 수면 시간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고요.

조금 있으면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아동 학대 예방과 아동 복지를 위한 정책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는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자라 나중에 선거권을 가지게 되면 어린이를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을 꼭 일꾼으로 뽑아주세요. 학대받는 어린이가 없는,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정치인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오길 바라요.

여인석·연세대 의대 교수(의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