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엘니뇨 때문에 패배… 기상이변이 역사 바꿨다

입력 : 2016.01.07 03:22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이번 주 내내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지난 12월은 월평균 기온이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42년간 가장 따뜻했다고 해요. 전 세계적으로도 겨울이 너무 따뜻해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죠. 알프스 산맥의 스키장은 눈이 녹아 흙바닥을 드러냈고, 미국 워싱턴에선 때아닌 봄꽃이 피기도 했지요. 이런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엘니뇨 때문이에요. 엘니뇨는 적도 부근의 바다가 더워지면서 온도 상승이 지속되는 현상이지요. 올겨울 찾아온 역사상 둘째로 강한 수퍼 엘니뇨로 지구촌 곳곳에 가뭄, 이상고온 등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엘니뇨는 혹한도 찾아오게 할 수 있답니다.

엘니뇨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사 속 다양한 사건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그중에서 오늘은 나폴레옹이 엘니뇨가 원인이 된 강추위로 패배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1812년 6월, 60만명이나 되는 나폴레옹의 군대는 러시아 원정을 나섰어요. 영국을 유럽에서 따돌리려는 프랑스의 계획을 무시하고 러시아가 영국과 무역을 했거든요. 나폴레옹의 군대는 유럽 최강이었고, 러시아 정벌은 유럽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기회였죠.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엘니뇨로 인한 모스크바의 혹한으로 패배했어요.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엘니뇨로 인한 모스크바의 혹한으로 패배했어요. /위키피디아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쿠투조프 러시아군 총사령관이 이끄는 러시아 군대는 변변히 싸우지도 않고 후퇴만 했어요. 프랑스군은 정신없이 적을 뒤쫓던 중 어느새 보급로가 끊겼고, 식량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지요. 게다가 여름철 무지막지한 더위와 굶주림에 병사들은 지쳐가고 있었어요. '모스크바까지 가면 결국 러시아가 항복할 거야. 많은 전리품을 챙겨서 고국에 돌아가야지.' 나폴레옹 군대의 희망사항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모스크바에 도착해보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온통 불바다였어요. 모두 불사르고 후퇴한 거죠. 폐허 속에서 한 달이 넘도록 항복을 기다렸지만, 러시아군은 넓은 영토를 발판 삼아 끝없이 후퇴할 것만 같았어요. 결국 나폴레옹은 10월 퇴각 명령을 내립니다.

돌아가는 길은 까마득했어요. 유난히 따뜻했던 날씨는 12월이 되자 영하 38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으로 변했어요. 대포는 얼어붙고,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병사들의 군복을 멋지게 빛내주던 은색 단추들이 하나씩 부서졌죠. 주석으로 만든 은빛 단추는 추위에 약해서 기온이 떨어지면 회색 가루가 되는 특성이 있거든요. 얇은 여름 군복에 단추까지 부서졌으니 러시아군의 습격을 받아도 손쓸 도리가 없었지요. 상상도 못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야수로 돌변해 약탈을 하거나 서로 죽이고, 부대에서 이탈했어요.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일생에 가장 끔찍한 전투였고,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의 길을 걷게 만들었답니다.

한편,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음악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러시아의 승리를 소재로 많은 명작을 창작해냈어요.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승리를 기념해서 '1812 서곡'이라는 곡을 완성했답니다. 종소리와 대포 소리가 일품인 이 곡은 장엄한 분위기가 압권이죠.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 역시 러시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랍니다. 나폴레옹의 패배가 러시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셈이에요.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812년의 기상이변은 엘니뇨 때문이었다고 해요. 만약 나폴레옹이 날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 원정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할 때, 타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똑같이 패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엘니뇨라는 자연재해도 패배의 한 요인이지만, 결국 섣부른 판단과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으니까요.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