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의학이야기] '느림보' 세균 때문에 크리스마스실 생겼어요
세균, 대부분 증식 빨라 하루 만에 확인 가능
결핵균은 속도 느려 한 달 지나야 알 수 있어
일제강점기 결핵 퇴치 앞장선 셔우드 홀, 국내서 크리스마스실 발행해 치료 도왔죠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읽어본 적 있나요? 꼽추인 콰시모도가 아름다운 여자 집시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모습을 비극적으로 표현하고, 억울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는 중세 시대 사회상도 잘 보여주는 명작이지요. 그런데 꼽추는 왜 등이 굽었을까요? 바로 결핵의 후유증 때문이에요. 우리 몸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척추뼈에 결핵이 생기면 뼈가 녹아내려 한 덩어리가 되고 등이 굽어요.
고대 이집트 미라의 폐·림프샘에서 결핵을 앓은 흔적이 나온 적도 있어요. 오늘날 쓰는 의학 용어를 과거에도 똑같이 사용하진 않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결핵은 특유의 흔적이 발견돼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항생제 개발되기 전, 결핵 치료법은 요양뿐
산업화가 본격 진행된 18~19세기 유럽, 결핵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유행했어요.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평소 건강이 나빴고, 작업 환경이 좋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결핵이 극성이었죠.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공장·학교·군대와 같이 많은 사람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곳에서 잘 발병하거든요.
- ▲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한 캐나다 선교 의사 셔우드 홀(왼쪽)과 그가 발간한 1934년 크리스마스실 ‘아기 업은 여인’(오른쪽). /고려우표사
20세기 들어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결핵을 치료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허약할수록 결핵에 쉽게 걸리다 보니 그저 잘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생각되었지요. 그래서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이나 바닷가에 결핵요양원을 짓고 거기서 환자들이 요양을 하며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다렸어요.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았지만, 많은 사람이 결핵을 앓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이 시기 예술 작품엔 결핵에 걸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요. 183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여자 주인공 미미는 결핵으로 죽어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대표적 소설인 '마의 산'은 1907년을 배경으로 알프스 산에 있는 결핵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뤄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도 이런 결핵요양원이 여러 곳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해주 구세결핵요양원인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선교 의사 셔우드 홀이 짓고 운영했던 시설이에요. 크리스마스실은 수익금으로 결핵 환자 치료를 돕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발행되지요.
◇세균학자 코흐가 결핵균을 찾아낸 비결은 '끈기'
요양으로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없어요. 결핵균을 찾아내 치료해야 하지요. 그렇다면 결핵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일의 유명한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1882년 발견했어요. 코흐가 활발히 연구 활동을 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계의 많은 의학자는 각종 전염병의 원인균(원인이 되는 세균)을 찾기 위해 경쟁했어요. 그 결과 많은 원인균이 발견돼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당시 가장 중요한 전염병 중 하나인 결핵균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많은 학자가 결핵의 원인균을 찾는 데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결핵균의 분열 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이에요. 과학자들은 세균을 관찰할 때 유리 접시(페트리 접시) 위에 영양분이 담긴 얇은 막인 한천 배지를 넣고 기다리는데, 보통 세균들은 하루 이틀 만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증식해 덩어리를 이뤄요. 다른 학자들은 길어야 일주일쯤 기다리다가 결핵균은 배양할 수 없는 균이라 생각하고 포기했어요. 하지만 코흐는 오래 참고 기다리며 관찰한 끝에 결핵균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눈에 관찰될 정도의 결핵균 덩어리가 형성되려면 거의 한 달이 걸린다고 해요.
- ▲ 그림=안병현
그 후 결핵의 예방법과 여러 치료약이 개발돼 결핵 치료는 큰 발전을 이루었어요. 하지만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새로운 결핵균들이 출현하면서 아직도 결핵 퇴치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위생·의학 수준이 높아졌는데도 지난해 결핵 발생률이 OECD국가 가운데 1위에 달해요. 독일의 코흐나 파스퇴르 연구소의 학자들처럼 우리 어린이들 중에서 더 좋은 결핵 치료법을 찾아내는 학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