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장소] 윤동주·이상·노천명·박노수… 예술가들 살았던 '도심 박물관'

입력 : 2015.12.14 05:30

[서울 '서촌']

서울에 있는 인왕산은 높이가 338m밖에 되지 않지만 계곡이 깊어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요. 이곳에서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지요. 지금은 호랑이가 살지 않지만, 산 중턱에 가면 호랑이 동상을 만날 수 있어요. 이 인왕산 아래 아기자기한 골목길 사이로 친근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촌이 있지요.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지역으로 조선 시대 역관·의관·궁녀·화가·서예가들의 집과 숙소가 있었던 곳이에요. 해가 지는 서쪽을 사대부들이 선호하지 않다 보니 중인·예술가들이 유난히 많이 살았지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근대 천재 시인 이상,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 박노수 화백, 시인 노천명과 최근 타계한 화가 천경자까지도 서촌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어요. 지금도 많은 예술가가 서촌을 지키고 있고요.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일대를 이르는 서촌 거리(오른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터(왼쪽)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일대를 이르는 서촌 거리(오른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터(왼쪽)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모두의 서울 차지은 작가
서촌에는 가옥이 약 2100채 있고, 이 중 약 30%인 668채가 한옥으로 보존되고 있어요. 서촌 한옥은 북촌 한옥과는 달리 일제 강점기에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이 많아요. 한옥의 크기도 작고 골목길도 좁지요. 고관대작이 살던 북촌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서촌은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에요.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안내판이 붙은 집을 만나게 되고, 이상과 노천명의 집도 발견할 수 있지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를 남긴 윤동주는 이곳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수많은 시를 썼답니다. 윤동주가 괴로운 현실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겼던 인왕산 중턱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문학관이 있어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다 보면 우리나라의 아픈 근대 역사의 현장과 만나게 돼요. 한국화의 거장 박노수 화백의 집으로, 현 박노수미술관이에요. 원래 이곳은 친일파 윤덕영이 자신의 딸에게 지어 준 서양식 집이었어요. 윤덕영은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1910년 경술국치 때 순종이 합병조약 문서에 대한제국 옥새를 찍게 한 악랄한 인물이에요. 그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와 엄청난 재산을 받아, 서촌 일대 절반에 가까운 땅을 사들여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았어요. 박노수미술관에는 기둥만 남은 벽수산장 터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 있지요.

붉은 벽돌로 지어져 아름다운 배화여고도 자리해 있어요. 1898년 미국 출신의 조세핀 캠벨 선교사가 세운 '캐롤라이나학당'이었던 이곳을 1910년 윤치호가 꽃을 기른다는 뜻을 담아 '배화학당'으로 이름을 바꿨대요.1916년 서양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배화여고 생활관은 건축미와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됐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졸업한 학교이기도 해요.

서촌의 또 다른 이름이 '세종마을'이란 걸 아시나요? 조선 3대 왕 태종이 왕자이던 때 서촌에 살며 1397년 셋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분이 바로 세종대왕이에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인 만큼, 서촌의 간판은 대부분 한글로 되어 있어요. 유명한 커피 전문점도 한글 간판을 사용하지요. 매년 한글날에는 세종대왕 어가 행렬을 비롯해 다양한 한글 축제도 열려요. 현재와 과거가 조화롭게 담겨 있는 서촌은 천천히 음미하며 구석구석 살펴봐야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곳이랍니다.



조현재·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국제관광인포럼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