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그림 속에서 '메롱' 하는 군인 보이시나요?
[위장술]
'위장'으로 천적 피하는 자연 생존법, 예술가들에게 미술 소재로 쓰여
군인 모습 숨어있는 이중근 작가 작품… 본모습 감추는 인간 이중성 꼬집어
- ▲ 작품 1 - 르네 마그리트, 자연의 은총, 1964.
자연 생태계 안에서 동물과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위장(僞裝·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하지요. 천적에게 들키지 않게 몸 모양을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꾸미거나, 눈에 띄지 않는 보호색으로 배경과 동화되거나, 다른 동물인 척하는 것 등이에요. 몸을 숨기는 위장술은 많은 예술가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기도 하지요.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목숨을 지키려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동식물의 위장술을 그림에 표현했어요. 작품 1에서 식물의 잎이 새 모양을 하고 있네요. 나뭇잎이 새로 변한 걸까요? 아니면 새들이 나뭇잎으로 변한 걸까요? 이 그림은 동물과 식물이라는 종의 경계를 허물고 특성이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립니다. 마그리트는 왜 생각의 틀을 깨는 역발상적 그림을 그렸을까요? 우리 눈에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해서예요. 이 그림도 평범한 새와 나뭇잎을 낯설게 만들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어요.
- ▲ 작품 2 - 이중근, 위장, 먹이사슬, 2002.
자연의 생존법인 위장술은 인간 삶에도 영향을 끼쳤어요. 예를 들어 전쟁터에서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입는 전투복의 얼룩무늬도 위장색을 본떠 만든 거예요. 한국 작가 이중근의 작품 2에서 위장색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은 멀리서 바라보면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린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확대해서 보면 놀랍게도 위장복을 입은 군인이 개구쟁이처럼 혀를 내미는 모습이 나타나요. 멀리서 보면 추상화인데, 가까이서 보면 인물화인 이 기발한 작품을 만든 의도는 무엇일까요? 진짜 모습을 감추고 습관적으로 위장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으려는 것이죠. 이중근 작가는 원통을 빙글빙글 돌리면 갖가지 무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놀이기구인 만화경에서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해요. 사물의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며,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거예요. 관객은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망원경처럼 전체를 보는 시각과 현미경처럼 세부 사항을 보는 시각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지혜를 배우게 되지요.
- ▲ 작품 3 - 류보린, 더 퓨처(The Future), 2015.
중국의 작가 류보린은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도구로 위장술을 활용해요. 작품 3은 전 세계 유엔 가입국 193곳 국기를 담은 사진 작품인데, 자세히 살피면 국기 가운데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고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요. 감쪽같이 숨은 남자는 작가 류보린이에요. 그는 배경색과 매우 비슷하게 얼굴과 몸, 옷을 색칠하고 배경 앞에서 다양한 자세를 잡은 뒤 사진을 찍는 작가로 유명해요. '투명인간' '위장의 달인'이라는 별명도 얻었지요. 그는 감추는 것이 오히려 더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류보린은 지난 9월 열린 2015년 제70회 유엔총회에서 제시된 가난·기후 환경·식량 등 여러 지구촌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랐어요. 국기 사이에 숨은 예술가의 위장한 모습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요.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숨은 의도를 알려줌으로써, 지구촌의 여러 문제점을 알리고 함께 해결하려는 마음도 불러일으켰지요.
- ▲ 작품 4 -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