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편리한 삶' 위한 개발… 불행인가 행복인가

입력 : 2015.12.10 03:08

['오래된 미래']

열악한 여건에서도 행복했던 라다크 사람들, 관광산업 활성화 위한 개발이 삶을 바꿨죠
자연은 파괴되고, 따뜻한 인간애 사라져

최근 '파리기후회의'도 개발의 뒷면 논의해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논의를 하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려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2020년부터 의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할 것을 놓고 협의 중이지요. 인류는 끊임없는 개발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을 얻었어요. 하지만 개발의 이면에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희생이 따르지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 지역의 개발 과정을 통해 개발이 어떤 폐해를 가지고 오는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산길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라다크는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죠. 지리적 위치 때문에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은 계절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요. 여름에는 뜨거운 더위에 시달리고, 8개월이고 되는 긴 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의 강추위를 견뎌야 하죠. 특히 겨울에는 저장해 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동물의 배설물을 연료로 쓰며 살아요. 문명의 편리함에 길든 우리로서는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생활일 거예요.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자연과 유대 관계를 맺고, 공생하며 평화와 행복을 누렸어요. 이들은 삶과 죽음까지 인간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 사이의 친밀한 유대를 통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도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고전이야기] '편리한 삶' 위한 개발… 불행인가 행복인가
/그림=이병익
"혹독한 기후와 부족한 자원에도 라다크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지극히 기초적인 작업 도구만을 가진 이들이 그토록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게 느껴진다. (중략) 커다란 기계의 힘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경우 이들은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협동 작업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일을 하는 동안 흥을 돋우는 노래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던 라다크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었어요. 1974년 인도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라다크를 개발하기 시작하자 이 지역에 국내외 자본과 기술이 물밀듯 유입되었죠. 덕분에 외딴 마을까지 보건소와 학교 같은 공공 편의 시설이 들어섰어요. 라디오·텔레비전을 통해 현대화된 서구 문화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더 풍족하고 편리해질 줄 알았던 그들의 삶은 물질적·정신적으로 빈곤의 길에 들어섰어요. 관광산업을 위한 도로와 건물로 산림은 파괴되었고, 기하급수로 늘어난 교통량·관광객 때문에 대기오염과 폐기물이 늘어났죠. 라다크는 경제 성장은 이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붕괴됐고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인간애와 순수한 정신적 가치는 사라졌어요.

"나는 라다크에 나타난 개발의 진행 과정 속에서 탐욕과 경쟁, 그리고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라다크에서 나는 이른바 진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대지와 이웃들과 분리되고 결국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개발 이전에는 자급자족을 통해 기초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경제 활동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해도 먹고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도시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자 돈의 중요성 또한 커졌고,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은 어려워졌어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고, 공동체의 유대감은 점차 약해지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탐욕·갈등·소외·분노가 생겨났어요.

이처럼 무분별한 개발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해요. 그렇다고 개발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통 생활 방식만을 고수할 수는 없어요. 개발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경제 성장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영위해온 사회적·생태학적 균형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도 그들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관습화된 개발의 방향을 답습하여 고유의 것을 해체해버리기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환경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해요. 그동안 인류가 인간 중심의 무분별하고 극단적인 개발로 지구를 파괴해왔다면, 이제는 환경 보전과 경제 성장의 균형을 추구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때예요. 환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 산업 또한 지속할 수 없을 거예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상생하던 과거의 가치관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자는 것, 바로 '오래된 미래'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예요.


[이 책의 작가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1946~)는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환경 운동가로서 현재 국제생태문화협회(ISEC) 대표로 활동 중이에요. 1975년 언어를 연구하려고 라다크에 들어갔다가 20년간 머물면서 라다크가 변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오래된 미래'(1992)라는 책을 펴냈어요. 그 뒤 전 세계를 돌며 지역의 문화와 생태주의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1986년 환경 보호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안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을 받았고, 올해 9월 우리나라에서 지속 가능하고 조화로운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어요.

조승희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