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종교이야기]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용서하고 보듬어줘요

입력 : 2015.12.09 03:01

자비의 희년

8일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이 개막됐어요. 로마의 4대 성전(역사·예술·신앙적으로 중요한 성당) 중 으뜸인 성 베드로 대성전의 문이 활짝 열리는 의식을 통해 그 시작을 알렸지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번 '자비의 희년' 기간 낙태라는 도덕적 시련을 겪은 여성들을 용서하시겠다고 밝혔어요. 우리 친구들도 잘못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엄마나 선생님의 꾸지람 끝에 따뜻한 용서의 말 한마디를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안도의 한숨을 쉰 기억이 있을 거예요. 가톨릭의 '자비의 희년'에는 신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와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는 의미가 있답니다. 희년을 개막하며 '성문(聖門·거룩한 문)을 여는 예식'은 세상을 향해 구원의 문을 연다는 의미지요.

희년(禧年)의 기원은 구약성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7년마다 안식년을 정해 이웃의 빚을 면제해 주고, 노예를 해방하고,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묵히면서 사람과 자연을 모두 쉬게 했어요. 7년 주기인 안식년을 일곱 번 돌면 49년이 지나는데, 그다음 50번째 해를 희년으로 삼았대요. 모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땅을 되돌려 줌으로써, 가난하고 멸시받아 움츠러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회복시켜 준 것이죠. 1300년부터 가톨릭교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희년을 지내기 시작했고 1475년 모든 사람이 일생에 한 번은 희년을 지낼 수 있도록 원래 50년이었던 희년 주기를 25년으로 단축했어요.

8일부터 내년까지 주변 이웃, 사회적 약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자비의 희년 기간이 계속돼요.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을 특별히 용서하고 돌보겠다고 예고했어요(오른쪽). 지난 2013년 12월, 교황께서 어린이 환자들의 크리스마스 소원을 듣고 그들이 어서 낫길 기도하고 있어요(왼쪽).
8일부터 내년까지 주변 이웃, 사회적 약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자비의 희년 기간이 계속돼요.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을 특별히 용서하고 돌보겠다고 예고했어요(오른쪽). 지난 2013년 12월, 교황께서 어린이 환자들의 크리스마스 소원을 듣고 그들이 어서 낫길 기도하고 있어요(왼쪽). /Corbis/토픽이미지·유튜브 캡처
어제부터 시작된 이번 희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된 지 딱 50주년 되는 것을 기념해 주기와 상관없이 선포된 '특별 희년'이에요. 가톨릭의 현대화를 표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3년에 이르는 회의 끝에 2000년 이어져 내려온 가톨릭의 신앙과 규범을 혁신했어요. 모국어로 드리는 미사(예배)·예식·미술의 토착화, 신자들의 능동적 역할 독려, 이웃에 대한 봉사 강화 등을 선포해 큰 변혁을 가져왔지요.

그런데 이번 희년의 주제가 왜 '자비'일까요? 교황께서는 자비야말로 현대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자 50년 전 공의회 정신을 참되게 계승하는 길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아요. 교황께서는 신자들을 돌보는 사목자로서 당신의 표어를 "자비로이 부르시니"로 정하셨는데, 이 구절은 동족에게 멸시받던 세관원 마태오를 예수께서 자비롭게 제자로 부르신 신약성경의 일화에서 따온 거예요.

교황께서는 약자들을 보듬는 모범을 자주 보여주고 계세요. 카퍼레이드 때마다 환자와 장애인들을 포옹하며 입 맞추시고, 해외 순방 때마다 빈민촌과 교도소를 방문하시거든요. 교황께서는 희년에 특별히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들로 낙태 여성뿐만 아니라 병자와 장애인,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언급하셨어요. 태아의 생명을 죽인 죄의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 죄를 지었지만 죗값을 치르며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예수께서 "건강한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에게는 필요하다"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이가 멀어진 친구나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면 어떨까요? 세상은 교황 말씀처럼 "약간의 자비로도 덜 차갑고 더 정의로운 곳"이 될 거예요.

김은영·가톨릭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