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한명회는 권력 욕심을, 이이는 지혜를 보여줬어요
[정자에 얽힌 역사]
한명회, 자신의 정자 '압구정' 매우 아껴 중국 명나라 사신의 탐방 요청도 거절
율곡 이이 '화석정' 기둥에 기름 발라 둬 정자에 난 불로 어둠 밝혀 임금의 피란 도와
지난 25일, 독일 베를린의 중심가인 포츠담 광장에 '통일정자(亭子·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해 기둥과 지붕만 지은 집)'가 세워졌어요. 독일 통일 25주년이자 한국 광복 70주년인 올해 한국과 독일이 서로 협력해 세운 이 통일정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깃들여져 있어요. 독일이 분단을 극복했듯이, 한국도 하나로 통일되는 그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찾아온다는 거예요. 통일정자가 세워진 포츠담 광장은 독일을 동서로 가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이기도 해요. 베를린 장벽이 어느 날 무너졌듯이, 한국을 남북으로 가른 철조망도 언젠가 사라지겠죠? 오늘은 아름다운 동양 전통의 건축물 '정자'를 통해 역사 탐방을 떠나볼게요.
- ▲ 지난 25일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에서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 정자가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어요. /연합뉴스
전통 건축물 가운데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을 생략하고 기둥과 지붕만 짓는 건물은 누각과 정자가 있어요. 누각은 다락처럼 높다랗고, 주로 사각형의 바닥을 가지며, 규모가 커요. 2층으로 지어질 수도 있고요. 한편, 정자는 정사각형·육각형·팔각형의 다양한 바닥 양식이 있고, 누각보다 규모가 작고 아담해요. 누각이 공공건물의 성격으로 자주 이용되었다면 정자는 개인용 공간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정자를 짓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짐작돼요.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백제 의자왕이 655년 대궐의 남쪽에 정자인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정자는 임금과 신하들이 자연을 벗 삼아 고상하게 여가를 보내는 곳이었어요.
조선시대 이름난 정자 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으로는 압구정과 화석정을 꼽을 수 있어요. 압구정은 조선 초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던 한명회가, 화석정은 오래도록 존경받는 충신 율곡 이이가 각각 소유했던 곳이에요.
◇압구정을 지어 권력을 뽐낸 한명회
압구정의 주인 한명회는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보필하던 신하들을 없앨 수 있게 도운 인물이에요. 권력을 차지한 수양대군은 1455년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조선 제7대 왕 세조가 되었어요. 한명회의 두 딸은 예종과 성종의 왕비가 되었고, 한명회의 권위는 왕 못지않았어요.
1476년 한명회는 한강변에 멋진 정자를 지었어요. 한명회의 부탁을 받은 명나라 사신 예겸이 '갈매기를 벗하며 한가롭게 남은 생애를 보낸다'는 뜻을 담아 정자의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고 지어주었어요. 한명회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이름이지만, 압구정을 매우 아꼈던 한명회는 자신의 호를 압구정으로 정하기도 했어요. 압구정에서 보는 경치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중국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지요. 1481년 조선을 방문한 중국 명나라 사신이 압구정을 구경하고 싶다고 성종에게 부탁했어요. 한명회는 압구정이 좁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 의사를 보였다가, 압구정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잔치를 여는 대신 왕실에서 사용하는 천막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걸었어요. 성종은 한명회의 태도를 불쾌하게 여겼어요. 그리고 압구정과 마찬가지로 한강변에 있는 왕실 소유의 정자 '제천정'에서 잔치를 치르게 했어요. 한명회는 제천정에서 벌이는 잔치에 불참하고 아내가 아파서 못 간다는 핑계를 댔어요. 이에 성종은 한명회에게 더욱 화가 났지요. 다른 신하들도 한명회의 무례함을 비난했어요. 결국 이 일을 계기로 한명회는 관직에서 물러나 권력에서 멀어졌어요. 한명회와는 달리 정자에 얽힌 사연으로 더욱 존경을 받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율곡 이이에요.
◇율곡 이이, 화석정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게 하다
1583년 율곡 이이는 군대와 식량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장차 큰 적이 침범해 왔을 때 화를 당할 것이라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어요. 그러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 왕조는 큰 위기에 빠지게 돼요. 선조는 급하게 의주로 피란을 떠나게 되었고,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야 했어요.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강을 건너기 힘든 상황에 처했죠. 계속해서 비가 내려 횃불을 밝힐 수도 없었어요. 그때 강기슭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이 활활 타면서 강 전체가 환해졌어요. 뱃길을 밝혀준 정자 덕분에 선조는 무사히 임진강을 건넜어요.
- ▲ 그림=이혁
화석정은 율곡 이이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1443년 지은 정자로, 율곡 이이가 1584년 사망하기 전까지 제자들과 자주 올라가 여생을 보냈던 곳이에요. 율곡 이이는 틈나는 대로 이 정자의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게 했대요. 내려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율곡이 '임진년 모월 모일,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는 유언을 남겼대요. 후세 사람들은 그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피란 행렬이 임진강을 건너가야 할 것을 미리 짐작했던 거라고 여기고, 율곡의 지혜에 감탄했다고 해요.
화석정은 복원되어 지금까지도 경기도 파주시가 역사 문화 유적으로 보존하고 있어요. 반면, 한명회가 그렇게 아꼈던 압구정은 1970년대 초까지 흔적이 남아 있다가 결국 사라졌고, '압구정동'이라는 지명 속에만 남아 있지요.
[당시 세계는?]
14~16세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Renaissance·학문 또는 예술의 부활이라는 뜻) 문화 운동이 서유럽 전체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어요. 르네상스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흥시켜 중세시대 말살되었던 인간의 창조성을 되살리고, 새 문화를 창출해내는 활동이었어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났지요. 대표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여신을 그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6),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로 그린 ‘최후의 심판’(1534~1541) 등이 있어요.
▲30일자 A30면 '뉴스 속의 한국사' 코너 중 압구정(鴨鷗亭)을 압구정(狎鷗亭)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