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여왕이 만든 곡 '알로하오에'로 나라 잃은 슬픔 달래
입력 : 2015.11.30 04:01
하와이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
- ▲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하와이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하와이의 마지막 왕이에요. 왕위에서 물러난 그녀는 하와이의 역사를 기록하고 하와이 말로 노래를 만들며 여생을 보냈어요. /위키피디아
무슨 말이냐고요? 하와이 원주민의 인사말이에요. 하와이에서는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알로하"라는 인사말을 건넨답니다. 아름다운 하와이는 현재 미국의 영토이지만, 한때 하와이 원주민들이 왕조를 세우고 살아가던 땅이었어요. 최근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왕조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라고 해요. '하와이주 원주민 등록위원회'가 30일까지 진행하는 대의원 선거에서 뽑힌 40인의 대표자들이 내년 초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의회를 소집할 예정이에요. 이때 원주민들은 미국에서 독립할지, 아니면 자치권을 인정받고 미국의 한 주로 남을지 등을 결정하게 된다고 해요.
일부 하와이 원주민이 왕조의 부활을 원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1838~ 1917)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하와이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비운의 군주였지요.
원래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하와이 제도(諸島·여러 섬)에는 원주민들이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는데, 1795년에 카메하메하 추장이 카우아이 섬과 니하이 섬을 제외한 모든 섬을 통합하고 하와이의 왕이 되었다고 해요. 하와이 왕조가 시작된 거예요. 1810년에는 하와이 전체를 통합하고 번성하던 왕조는 1874년 대규모로 이주해온 미국인들에게 점차 휘둘리게 되었어요. 하와이에 대한 무역 특혜권과 하와이 제도 오아후 섬에 있는 진주만 항구를 미국에게 넘겨준다는 조약도 맺게 되었죠.
1891년 즉위한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 최초의 여왕이었어요. 선대 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의 오빠가 세상을 뜨자, 그 뒤를 이었던 것이죠. 릴리우오칼라니는 이대로 가면 하와이가 미국의 영토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새 헌법을 만들어서 미국과의 조약을 무효화하려고 했어요. 또한 하와이 원주민에게 투표권을 줌으로써 독립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러자 미국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왕권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어요. 릴리우오칼라니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하와이의 주요 수출품이던 설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서 수출을 방해했고, 하와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죠. 1893년에는 하와이에 살던 미국과 유럽의 기업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여왕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어요. 여왕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1895년 자신의 지지자들이 감옥에 갇히자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결국 왕위에서 물러났고 하와이 왕조는 멸망했어요. 1897년 미국과의 합병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듬해 하와이는 미국의 주권하에 놓이게 되었죠. 사탕수수 농장을 미국인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던 탓에, 하와이 원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산속으로 들어가 어렵게 살아가게 되었어요. 훗날 미국 정부는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의 역사를 남기기로 결심해요. 하와이 섬들의 이야기와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가 외국 세력에게 쫓겨나는 과정을 모아 '하와이 여왕의 하와이 이야기'라는 책을 썼어요. 하와이 말로 된 노래도 여러 곡을 만들었지요. 릴리우오칼라니가 만든 노래 가운데 대표곡인 '알로하오에'는 사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지은 노래라고 해요. 당시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떠오른 멜로디에 먼 길을 떠나는 연인을 생각하는 애틋한 가사를 붙였다는군요. 하와이 사람들은 마지막 여왕이 남기고 간 '알로하오에'를 부르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랬어요.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이 일제 강점기 때 주권을 잃은 아픔을 달랬던 것처럼요. '알로하오에'는 하와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서 하와이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