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희망의 날갯짓, 망치 든 거인… 도시를 미술관으로 만들다
[공공미술]
광화문의 '망치질 하는 사람'처럼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예술 작품들
경관 아름답게 하고 감동도 주지요
건물 앞이나 광장처럼 눈에 잘 띄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에서는 거의 언제나 공공 조형물을 만날 수 있어요. 면적이 넓은 건축물을 지을 때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도록 하는 '문화예술진흥법'이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공공미술로 우리가 살고 있는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요. 이 법에 따르면 공공 조형물을 설치할 때, 반드시 정부 당국의 작품 심사를 통과해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공공장소에 놓여 있다고 해서 아무거나 공공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자,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하나의 작품이 진정한 공공미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 ▲ 조너선 보로프스키, '망치질하는 사람(2002)',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이주은 교수 제공
과거엔 공공장소에 왕의 동상이 많이 세워졌어요. 왕의 동상은 많은 사람이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조형물은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동상을 보고, 저렇게 대단한 분이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하려고 세운 거였죠.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 왕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궁전 앞에 세워둔 왕의 동상도 왕과 똑같이 높은 받침대에서 내려와 처참하게 부수어지는 운명을 겪었어요.
시대가 바뀌어 왕의 동상을 세우지 않게 된 후엔 교육 목적으로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을 기념하는 공공조각을 만들었어요. 서울 광화문광장에도 1968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높였죠. 그러나 국민 모두에게 교훈을 주는 위인을 선정하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었어요. 공공 조형물은 보통 약 100년을 예상하고 만드는데, 동상으로 만든 위인에 대한 평가는 한 세기 동안 몇 번이나 바뀔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영웅은 지극히 드물지요.
그래서 점차 위인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공공 조형물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어요. 서울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해머링 맨·왼쪽 사진)'을 본 적 있나요?
'망치질하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높은 받침대 위에 올라가 있지 않고, 그냥 길에 서 있어요. 대단한 위인이 아니라 누구인지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평범한 근로자를 상징하지요. 그래도 그는 훌륭한 사람임이 틀림없어요. 고된 망치질을 하면서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열심히 다져가고 있으니까요. 맨 처음 '망치질하는 사람'이 세워졌을 때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머리 위에서 덩치 큰 시커먼 거인이 망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모습을 보고 위협적이라고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작품은 한때 길거리 쪽이 아닌 건물 쪽으로 한 걸음 옮겨졌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차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시민들이 거인의 모습을 보고 성실하게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기 옆자리 동료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시민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이 거인은 다시 거리 쪽에 놓였어요.
- ▲ 앤서니 곰리, ‘북방의 천사(1998)’, 영국 게이츠헤드. /위키피디아
이처럼 공공미술은 여러 사람과 경험을 나누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해요. 그러지 못한 작품은 아무리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날지라도 공공 조형물로서는 적합하지 않아요. 1981년 미국의 뉴욕에서는 정부 센터가 있는 분수광장에 '기울어진 호'라는 철로 만든 장막 같은 작품을 설치한 적 있었어요. 작가의 의도는 사람들이 긴 작품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며 작품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건물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입구 쪽 진입로를 막고 있는 작품 때문에 빙 돌아 다녀야 했거든요. 통행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열린 광장을 가로지르며 놓인 철 가림막 때문에 정부와 시민의 대화도 철저히 막혀 있다는 인상을 줬어요. 결국 논의 끝에 이 작품은 광장에서 치워지고 말았답니다. 공공 조형물로 평범하던 곳이 아주 특별한 장소로 새롭게 태어난 좋은 사례도 있어요. 앤서니 곰리가 만든 '북방의 천사(위쪽 사진)'라는 작품입니다. 탄광촌이던 영국의 게이츠헤드는 1930년대 대공황 등을 겪으며 경제가 무너졌어요. 1998년, 석탄이 채굴되던 언덕 위로 커다란 조형물이 놓였어요. 그것은 양팔을 벌려 비행기 같은 포즈로 거대한 날개를 편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평생 어두운 땅속을 파서 생활해 왔던 마을 사람들에게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 같은 기쁨을 주었어요. 처음엔 쓸데없는 조형물을 세울 돈이 있으면 차라리 병원과 복지시설을 세우자며 반대했던 사람들도 감동했지요. '북방의 천사'는 게이츠헤드에 꿈과 희망을 주려고 내려온 진짜 천사였던 모양이에요. '북방의 천사'가 영국 최고의 공공미술품이라는 평가를 받아 영국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 도시에는 아름다운 다리·미술관·콘서트홀이 차례로 들어섰어요. 그러자 관광객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어느덧 그 숫자가 매년 15만명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게이츠헤드는 성공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로 재탄생했답니다. 공공미술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셈이지요.
[바람직한 공공조형물은…]
1. 누구나 좋아하고, 이해하기 쉬운 주제여야 한다.
2. 공익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3. 작품이 놓일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4. 관람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