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심리이야기] 여러 명 모이면 '가면' 뒤에 숨게 돼요

입력 : 2015.11.25 03:09

[군중심리]

군중 속의 익명성 영향으로 책임감 약해지고
폭력 성향 나타나 절제력 잃고 남 따라 행동하기도
개개인 떼어놓고 보면 나약하기 때문… 군중 속 폭력행위에 휩쓸리지 말아요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에서는 ‘민중 총궐기’ 시위가 열려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차 유리를 부수는 등 폭력 행위를 한 집회 참가자들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를 쏜 경찰의 충돌이 있었어요.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에서는 ‘민중 총궐기’ 시위가 열려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차 유리를 부수는 등 폭력 행위를 한 집회 참가자들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를 쏜 경찰의 충돌이 있었어요. /장련성 객원기자

지난 14일, 서울 세종대로 등 도심 일대에서 6만8000여 명이 모인 '민중 총궐기' 시위가 있었어요. 과격한 시위로 경찰관이 다치고 경찰차가 부서졌다는 주장과,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시민이 부상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요. 왜 사람들은 모이게 되면 폭력을 쓰게 될까요? 원래 사람들의 내면에 남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일까요?

201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 우승이 좌절된 뒤 시민 수천 명이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킨 '밴쿠버 폭동 사건'이 있었어요. 캐나다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자국 팀이 패하자, 성난 시민들은 시내 한가운데에서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상점들을 털고, 경찰들을 공격했어요. 시내 은행과 백화점 등 많은 건물이 파손되었고 곳곳에 불이 났어요. 순식간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고요. 경찰은 강경 진압을 할 수밖에는 없었고 최루가스·섬광 폭탄·경찰봉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경찰견을 풀어 공격하게 했어요. 경찰과 시위대의 한바탕 전쟁이었지요. 이후 100여 명이나 되는 폭도 용의자가 입건되었는데 그들은 순순히 범죄 혐의를 인정했어요. 그들은 경찰 조사에서 "왜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고,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좋은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어요.

정상적인 일반 시민들이 이성을 잃고 포악한 사람으로 바뀐 이유는 바로 군중의 힘 때문이지요.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군중 안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만들어지고, 이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라는 압력을 가해요. 군중의 힘은 때로는 무고한 희생자를 내는 폭력 행위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어요.

'군중심리'란, 다수에게서 영향을 받아 자신의 태도나 믿음·감정·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해요. 우리 개개인은 서로 다른 가치와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이 군중 안에 속하게 되면 절제력을 잃고 생각 없는 인형처럼 자기 의견을 잃어요. 개인의 주관이 사라지고, 자신으로부터 이탈되어, 집단의 생각이 개인의 생각을 점령하는 '탈개인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치킨 리틀〉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이솝우화 〈암탉 페니〉에서는 군중심리의 부정적 파급효과인 '집단히스테리'를 볼 수 있어요. 꼬마 병아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에 머리를 맞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이 망한다"고 소리쳐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이야기예요. 마을 사람 전체가 세상이 망한다는 생각에 빠져 공포에 떠는 집단히스테리에 빠진 거예요. 사실, 병아리 머리에 떨어진 것은 도토리에 불과했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도 않았어요. 집단히스테리는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군중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먼저 '책임감의 분산'이 있어요.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개인적인 책임감을 덜 가지는 경향이 있어요. 혼자 폭력을 쓰게 되면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지만, 군중의 일원이 된다면 사람의 수만큼 책임이 분산돼요. 또 큰 집단에 속해 있을 때, 개인은 '익명성'을 느껴요. 많은 사람 무리 속에서는 자신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며 나쁜 짓을 해도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얼굴을 가리는 복면을 쓰면 익명성이 확실하게 보장돼 더욱 폭력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시위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마스크나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요.

군중 안에서는 쉽게 '모방 행동'이 일어나요. 옆에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창문을 부수는 행동을 하면, 다들 폭력 행동을 목표로 삼아 같이 따라 하면서 폭력을 쓰게 돼요. 처음 목표는 잊어버리고 공격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에요. 군중이 저지르는 잔인한 행위는 사이코패스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군중 심리에 홀려 폭력 행위에 동조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요.

독일 나치 정권의 히틀러는 사람들을 개개인으로 대하기보다 집단으로 대할 때, 사람들이 우둔하고 비이성적이며 쉽게 설득된다는 점을 이용했다고 해요. 그는 늘 광장에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연설을 했고, 다리를 곧게 뻗는 절도 있는 걸음걸이의 군대 행진 장면을 자주 보여줬어요. 집단의 강인함을 강조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갖도록 한 거예요.

사람이 모여 군중을 이루게 되면 강경해지고 과격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군중의 힘을 빌리고 싶을 만큼, 사람들 개개인이 나약하기 때문이에요. 나 혼자의 나약함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해요. 특히 다른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을 했을 때 그 옆에 있더라도 휩쓸리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나치의 홀로코스트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을 수 있고, 시위를 통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건물이 파괴되는 일도 예방할 수 있어요.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