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미래엔 좋아하는 연예인이 로봇일 수도?

입력 : 2015.11.17 03:08

[연기하는 로봇]

일본 영화 '사요나라' 주인공으로 열연
걸을 순 없어 휠체어에 앉은 채 연기… 65가지 표정 짓지만 애드리브는 못 해
조금 떨어져서 보면 진짜 사람 같아요

오는 21일 일본에서 로봇이 주인공을 연기하는 영화 '사요나라'가 개봉해요.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영화 줄거리가 전개되는데요. 일본 전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자 일본 정부는 각국의 협력을 받아 국민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지요. 외국인 난민이라는 이유로 이주 우선순위에서 밀린 채 죽어가는 '타냐'와 어려서부터 병약한 그녀를 간호하는 로봇 '레오나'가 주인공이에요.

[재미있는 과학] 미래엔 좋아하는 연예인이 로봇일 수도?
/그림=안병현
특이한 점은 로봇인 레오나 역을 실제로 로봇이 맡았고,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이 로봇 이름은 '제미노이드 F'로, 엔딩 자막에도 이름이 나오지요. 그런데 사실 인간 배우들도 연기가 어색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요. 하물며 로봇의 연기는 더 어리숙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사실 제미노이드 F는 2010년부터 동명의 연극 작품 '사요나라'에 출연했고, 2013년에는 한국에서 공연한 적도 있어요. 연기 경력이 벌써 6년째죠. 또한 로봇을 연극이나 영화에 출연시키는 시도는 200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고차원적 연기가 힘들어 유명한 로봇 영화에는 잘 출연시키지 않았죠. '바이센테니얼 맨'(1999)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유리섬유·실리콘·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약 15kg 무게의 특수 의상을 입고 로봇 연기를 했답니다. 'A.I.'(2001)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로봇을 표현했고요. 과연 로봇의 연기는 현재 어느 정도로 발전한 상태일까요?

표정 연기 '합격'

"이제 가지 않으면 안 돼. 바로 가지 않으면 안 돼." 극 중 레오나는 타냐에게 서둘러 외국으로 떠나라고 이야기해요.

영화‘사요나라’에는 로봇인 제미노이드 F가 연기하는 간호 로봇‘레오나’(왼쪽)와 사람이 연기하는‘타냐’(오른쪽)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영화‘사요나라’에는 로봇인 제미노이드 F가 연기하는 간호 로봇‘레오나’(왼쪽)와 사람이 연기하는‘타냐’(오른쪽)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팬텀 필름
레오나는 기계음이 아닌 인간 여성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사를 이어가요. 제미노이드 F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체 기관인 성대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 여배우가 제미노이드 F의 입 모양에 맞춰 '립싱크'로 대사를 읽어주는 거예요. 사실 기계음으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기술은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 연기자의 반응에 따라서 로봇이 적절한 대사를 내뱉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진 않았어요. 즉흥적 연기, 즉 애드리브를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제미노이드 F의 표정 연기는 매우 뛰어나다고 해요. 눈을 깜박이거나, 입을 움직여서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등 65가지 표정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한번 10가지의 다른 표정을 지으려고 해보세요. 의외로 힘들죠? 제미노이드 F는 감독이 원하는 미묘한 표정 연기를 그대로 해낼 수 있는 배우인 셈이에요. 표정 하나하나를 제작진이 노트북으로 원격으로 조종하면서 원하는 표정을 적합한 시점에 끌어낼 수 있거든요. 또한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돌리는 동작, 등을 살짝 구부리는 동작도 자연스러운 데다가, 실리콘 등으로 만든 얼굴도 인간과 매우 흡사해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실제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지요.

걷는 연기 '불합격'

제미노이드 F는 걸을 수 없어서 영화에선 휠체어를 타거나 바닥과 의자에 앉아있어요. 걸음을 걷는 로봇은 만들기 어려운 걸까요? 한번 일어서서 차렷 자세를 하고 자신이 로봇이라고 생각해 봐요. 그리고 한 발을 들고 남은 한 발로만 서 보세요. 이제 자신을 움직이지 않는 로봇이라고 믿고 2~3초 뒤에 고개를 숙여 발과 다리를 내려다보세요. 어떤가요?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렵지요? 마찬가지로 로봇이 걸음을 옮기기 위해 한쪽 다리를 들어 발을 내디디고 다른 쪽 다리를 드는 과정에서 로봇은 약간의 충격에도 휘청거릴 수 있어요.

제미노이드 F는 이빨이 살짝 보이게 미소 짓거나(사진 맨 왼쪽), 찡그리는 표정(가운데) 등 65가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어요. 이 로봇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이유는 피부 아래에 12종류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죠(오른쪽).
제미노이드 F는 이빨이 살짝 보이게 미소 짓거나(사진 맨 왼쪽), 찡그리는 표정(가운데) 등 65가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어요. 이 로봇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이유는 피부 아래에 12종류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죠(오른쪽). /오사카 대학
사람은 귀 안쪽에 세반고리관이 있어 위아래, 좌우, 앞뒤 균형을 가늠하여 몸 전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지만, 로봇에는 이런 균형 감각이 없거든요. 그래서 로봇공학자들은 인간의 세반고리관 역할을 하는 센서를 로봇에 설치했어요. 센서는 힘·관성·가속도 등 자세를 잡는 데 필요한 정보를 파악한 뒤 관절과 모터를 이용해 로봇의 발목을 중심으로 균형을 잡도록 하는데, 이를 '안정화'라고 해요. 따라서 로봇이 걷는 순서는 '왼발 안정화→오른발 내딛기→두 발 안정화→오른발 안정화→왼발 내딛기→두 발 안정화→(다시) 왼발 안정화'로 진행돼요.

하지만 안정화를 거쳐도 로봇의 걷는 연기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휴보'와 일본의 '아시모' 같은 로봇은 안정화를 중시해 발바닥을 '평발'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론 미국의 로봇 '펫맨'은 사람 발 모양을 한 발꿈치로 걷지만, 휴보와 아시모 같은 모터를 이용한 방식이 아닌 기름을 이용한 유압식이어서 항상 같은 힘을 가하더라도 기계 장치가 압축되거나 팽창되는 길이가 달라져 훨씬 정교한 제어가 필요해요. 그래서 오래 걸으면 걸음걸이가 미묘하게 변하고 어색해져요. 아직까지 사람의 걸음걸이를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는 로봇이 없는 이유예요.

로봇이 인간 배우 대체할 수 있을까

사실 제미노이드 F의 연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어요. 영화에서 타냐는 방사능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녀에게 죽음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요. 하지만 함께 출연하는 제미노이드 F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모르지요. 만약 미래에 로봇이 인간 고유의 감정까지 지닐 수 있다면, 로봇 배우와 인간 배우 간 생물학적 차이 외엔 그 경계가 사라지겠죠?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