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높은 벼슬 버리고 절 지은 김대성… 찬란한 유산 남겼지요

입력 : 2015.11.16 03:24

[불국사 지은 김대성]

부모 향한 효심·살생에 대한 반성으로 건설
통일신라 대표 불교 건축물로 남겨져…
경덕왕도 효성으로 '에밀레종' 만들었어요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 보수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내년 초에 공개를 앞두고 있다고 해요. 석가탑은 지난 2010년 12월에 치러진 정기 안전 점검에서 탑의 기초 부분에 뚜껑처럼 올려놓는 납작한 돌인 갑석에 금이 가고 틈이 생겨 2012년 9월부터 탑 전체를 완전히 해체하고 보수하는 공사를 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동안 일반인들은 석가탑의 모습 대신 모형만 관람할 수 있었어요.

석가탑은 다보탑과 함께 불국사 안에 나란히 서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국보예요. 불국사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절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불국사·석굴암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신라 경덕왕 때 중시라는 벼슬에 올랐던 김대성이란 인물이라고 해요. 스님도 아니었던 김대성은 무엇 때문에 통일신라의 불교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두 개씩이나 지었을까요?

◇불국사 지은 김대성, 통일신라의 국무총리였대요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불국사·석굴암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불사(석굴암)를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자 혜공왕 10년(774) 나라와 집안에서 완성을 보았다… 김대성은 원래 서라벌의 모량리라는 곳에서 태어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갑자기 죽었으나 김문량이라는 재상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 집사부의 중시라는 높은 벼슬에 올라 사냥을 즐기던 김대성은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고, 사냥을 마치고 산 아랫마을에서 잠을 자다 꿈을 꿨는데 꿈에 자기가 사냥한 곰이 나타나 '나를 위해 절을 지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대성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꿈에서 깬 뒤에 함부로 살생을 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때부터 벼슬을 그만두고 절을 짓기로 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혁

신라 시대 김대성이 전생에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다가 일찍 죽고, 재상의 아들로 환생해 불국사·석굴암을 지었다는 이야기예요.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중시라는 높은 벼슬까지 올랐었다고 전해져요. 김대성의 벼슬이었던 중시는 어떤 직책일까요? 중시란 신라의 중앙 최고 행정기관인 집사부의 장관으로 국왕을 보좌하고 왕명을 받들어 밑으로 여러 기관을 거느리는 임무를 맡았어요. 통일신라 때 왕권이 강해지며 재상 즉 지금의 국무총리 역할을 하였죠.

김대성은 750년에 꿈에서 자신이 죽인 곰이 나온 것을 계기로 나랏일에서 물러나 절을 여러 개 지었는데, 이 가운데서도 가치가 뛰어난 불국사·석굴암은 부모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요.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해지지요.

그런데 곰이 꿈에 나와서 말을 했고, 김대성이 전생과 현생의 부모를 동시에 기억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도 김대성이 나온다고 해요. '경덕왕 4년에 이찬 대정(大正)이 중시가 되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역사학자들은 김대정을 김대성의 다른 이름으로 짐작하지요. 삼국유사·삼국사기에 공통적으로 김대성이 실존 인물로 등장해 불국사·석굴암을 짓기 위해 자신의 삶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불국사·에밀레종… 통일신라 왕권 강화 노력이기도

김대성을 중시로 삼았던 경덕왕도 부모님의 명복을 빌며 지극한 효성으로 만들게 한 특별한 물건이 있었어요. 바로 성덕대왕신종이에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은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을 위하여 황동 12만 근으로 큰 종 1개를 만들게 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그 아들 혜공왕이 기술자들을 모아서 이를 완성하게 하여 봉덕사에 두었다고 해요.

지난 4일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경북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조립해 복원하고 있어요.
지난 4일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경북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조립해 복원하고 있어요. /문화재청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3.75m, 무게 18.9t(톤)이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범종(梵鐘·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위해 치는 종)이에요. 소리가 그윽하고 아름답게 울리며 "에밀레~"라는 여운을 내어 에밀레종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 바로 그 종이지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요.

경덕왕 때 만들기 시작한 불국사·석굴암·성덕대왕신종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그 시대 통일신라가 어땠는지도 궁금하지요? 742년에 왕위에 오른 경덕왕은 통일신라의 왕권이 살짝 기울자 왕권을 다시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어요. 관리들을 감시하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정찰이란 관직을 새로 만들었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박사의 수를 늘려 나랏일을 돕게 했으며, 제도·지명·관직을 당나라식으로 바꾸며 당나라처럼 왕이 중심이 되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어요. 성덕대왕신종을 만들게 한 것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에 바탕을 둔 것은 맞지만 선왕인 성덕왕의 권위를 높여 왕권을 안정시키려 한 것이기도 하지요. 불국사·석굴암을 지은 것 또한 불교 신앙의 힘을 빌려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해요.

[당시 세계는?]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최전성기를 맞았던 동시에 중국·아랍 사이에 충돌이 있었어요. 특히 불국사가 건축되기 시작한 751년, 당나라 군대가 아랍 연합세력인 압바스·위구르 연합군과 맞붙어 당이 패한 탈라스 전투가 벌어졌죠. 이때 당나라에서 종이를 만들던 비법이 처음으로 아랍에 넘어갔지요. 보관이 간편한 데다가 위조하면 반드시 티가 났기 때문에 멀리서 오는 보고를 받는 왕과 상인들에게 종이는 필수품이었어요. 중국에서 아랍을 거쳐 지중해까지 진출한 종이는 세계로 퍼져 나가며 이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하게 된답니다.

지호진·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