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남과 북 이렇게 달라요] 北, 다른 도시 친척 집 가려면 '직장 허락' 받아야 해요

입력 : 2015.11.04 03:09

친척 방문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하연이는 서울과 인천, 대전에 친척 집이 있어요. 하연이네 가족은 가끔 주말에 대전이나 인천의 친척 집에 놀러가요. 특히 인천에 있는 사촌동생 서영이는 하연이와 마음이 잘 맞는 동생이랍니다. 동생을 갖고 싶은 하연이는 이따금 서영이를 떠올리고 "아빠, 인천으로 서영이네 보러 가요!"라고 떼를 쓰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친척들과 왕래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오랜 풍습이 있어요. 물론 가족을 함부로 대하는 남보다 못한 친척도 있다지만, 일반적으로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지요.

한편, 북한의 나선특별시에 사는 지원이네 가족은 평안남도 양덕시에서 열리는 삼촌의 결혼식에 찾아가려고 해요.

북한에서 열린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의 친척들이 참석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고 있어요(왼쪽 사진). 북한에서는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주로 기차를 많이 타는데, 정전과 고장이 잦아서 자주 멈추고 열차 시각이 지연된다고 해요(오른쪽 사진).
북한에서 열린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의 친척들이 참석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고 있어요(왼쪽 사진). 북한에서는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주로 기차를 많이 타는데, 정전과 고장이 잦아서 자주 멈추고 열차 시각이 지연된다고 해요(오른쪽 사진). /뉴시스·플리커
우선 지원이네 아버지 직장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겠다고 미리 허락을 받아야 되지요. 기차를 타고 양덕으로 간 지원이네 가족은 5시간쯤 걸려 결혼식장에 도착했어요. 결혼식에 참석했다 다음 날 다시 집에 돌아왔답니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친척 또는 가족끼리 정이 두터워 자주 찾아가려고 하는 미풍양속은 별 차이 없지만, 북한의 교통수단이 남한보다 낙후되어 있어서 우리처럼 자주 왕래하지는 못해요.

지원이네 가족이 기차를 타고 찾아간 나선에서 양덕까지는 남한의 서울에서 대전까지 이동 거리와 비슷한데요. 남한의 KTX 열차로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예요. 북한의 기차는 고장이나 정전으로 자주 멈추기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고, 가끔 심각할 땐 기차 안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벌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기차여행을 할 때 꼭 도시락을 준비하지요.

게다가 북한에서는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미리 직장에 보고하고 윗사람의 허락을 받아요. 우리처럼 언제 어디서라도 자유롭게 친척 집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여행 허가를 받아도 다른 도시에서 숙박할 호텔이나 여관도 아주 부족하고, 식사를 해결할 식당도 많지 않아서 하나하나 어려운 점이 많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이 어려워도 결혼식·장례식에는 친척들이 반드시 모여요. 이런 모습은 남한과 큰 차이가 없죠? 흔히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간의 생활에서 겪는 중대한 일)로 불리는 결혼식은 먼 곳에서도 친척들이 와서 축하해주곤 한답니다.

남한에서처럼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하루 만에 다녀오기는 불가능하므로, 하루 이틀 친척 집에서 묵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지요.

그 후 갓 결혼한 신랑·신부는 친척 집에 다시 방문해 인사를 드린답니다. 이것을 '반살기'라는 풍습이라고 해요. 삼촌·외삼촌·형제자매 등 가까운 친척이 신랑·신부를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거예요. 반살기를 통해서 신랑·신부의 가족들이 서로 인사하고, 친척들끼리 안면을 넓힐 수 있지요. 그런데 슬프게도 요즘은 북한에 먹을 것이 부족하다 보니 반살기 풍습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요. 남한에서도 북한의 반살기와 비슷하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친척 집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풍습이 있지요. 남한의 이런 풍습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답니다.

이렇듯 북한에서는 다른 도시에 사는 친척을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멀리 사는 친척들보다는 오히려 같은 직장이나 마을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낸다고 해요. 이웃에 살면 정이 들어 사촌 형제처럼 가깝다는 뜻의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도 똑같이 쓴다고 하네요. 하지만 가족이 소중하고 친척들 간의 정이 깊은 것은 북한도 남한과 마찬가지일 거예요.

김지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