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유산탐방] '위키피디아'의 원조? 협력·소통으로 만들어 낸 유산

입력 : 2015.10.22 03:07

한국의 유교책판

인터넷 이용자들이 함께 만드는 세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아시나요? 사이버 공간에서 주목받고 있는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集團知性)을 통해 만들어졌어요. 집단지성이란 많은 사람이 협력하고 소통해서 얻게 된 지성이란 뜻이에요.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해 만든 말이랍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이 집단지성을 활용한 기록유산을 남겨온 것을 알고 있나요? 지난 10월 10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儒敎冊版)'이 바로 그러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랍니다.

지난 10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한국의 유교책판’가운데 특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퇴계선생문집’이에요.
지난 10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한국의 유교책판’가운데 특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퇴계선생문집’이에요.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어요.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유교책판이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저작물을 펴낼 때 사용한 목판(木版)을 이르는 말이에요. 유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스스로 기록으로 남겼고, 제자들은 스승의 저작물을 책판으로 제작해 간행했어요. 이 과정에서 출판 여부와 수록 내용 등을 결정하기 위해 반드시 거친 공론(公論)을 집단지성의 과정으로 볼 수 있어요. 공론 과정에는 문중(門中), 학맥(學脈), 서원(書院), 지역사회로 연결된 지식인 집단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책판을 만드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도 십시일반으로 부담했다고 해요. 이러한 '공동체 출판'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출판 형태라고 합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어요. 유교책판은 주로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산벚나무 등으로 제작되어 민간에서 보관해 왔어요.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는 한때 책판이 땔감이나 빨래판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장판각에 있는 책판의 약 99%는 현재도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유교책판은 총 718종 6만422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18종은 다시 문집·성리서·족보·예학서·역사서·아동교육서·지리서·기타의 8개 분야로 분류돼 있어요. 종류는 다양하지만 유교의 가르침에 맞는 공동체 사회를 이룩하자는 일관된 주제를 담았답니다. 이러한 사상이 후대의 집단지성을 통해 발전해 나간 과정을 유교책판을 통해 엿볼 수 있지요. 특히 '퇴계선생문집'은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교책판으로 꼽힙니다. 이 책판은 1600년 도산서원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의 교정을 거쳐 1724년, 1817년, 1904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나왔어요. 후학들이 퇴계 선생의 사상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공론을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에요. 현재 장판각에는 1600년 간행된 '퇴계선생문집' 초간본(49권 27책) 책판 691장과 1904년 판본(66권 27책)의 책판 1074장이 보관돼 있어요.

후학들은 '퇴계선생문집' 책판을 고치고 다시 새기는 과정을 1817년 '선생문집개간일기'와 1843년 '중간일기'에 담았는데, 그 배경과 진행 과정, 비용과 재원 마련 방안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책판 제작 때 목판 한 장을 판각하는 데 요즘 시세로 200만원 이상이 들었고, '퇴계선생문집'의 총제작비용은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억원이 넘는다고 해요.

한국의 유교책판은 유교의 학문적 성과를 5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러한 상징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고요. 유교책판을 포함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총 13건이에요. 이로써 세계에서 넷째이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답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