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의학이야기] 낙타에 숨어 살던 '코로나 바이러스'… 난 누구일까요

입력 : 2015.10.21 03:10

[메르스 바이러스]

감기의 주범인 '코로나 바이러스'… 동물서 옮기면 증식 속도 빨라져
일명 '낙타 감기' 메르스처럼 인체에 위협적일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메르스 바이러스'입니다. 얼마 전에 또 놀라셨죠? 한국에서 마지막 메르스 환자가 열로 입원했다면서요? 제가 또 유행할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환자는 원래 앓고 있던 혈액암이 악화돼 입원한 것이지 저 때문은 아니랍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라는 어려운 이름을 붙여주셨지만, 전 원래 주로 중동 낙타들한테 '낙타 감기'를 일으키며 살아온 바이러스예요. 몰래 사람들한테 옮아 가 살기도 했는데, 2012년에 발각됐죠. 저한테 감염되면 열·기침·가래가 많이 나다가 심한 폐렴을 앓기도 해요. 더 심각하면 상당수가 목숨을 잃지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00명 넘게 감염시키자 '새로운 위험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며 전 세계적 뉴스가 됐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메르스(왼쪽), 대장균(위), 사스(아래) 사진이에요. 메르스와 사스는 바이러스, 대장균은 세균(박테리아)으로 구분된답니다. 바이러스는 세포를 뚫고 들어가야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세균은 스스로 생존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전자현미경으로 본 메르스(왼쪽), 대장균(위), 사스(아래) 사진이에요. 메르스와 사스는 바이러스, 대장균은 세균(박테리아)으로 구분된답니다. 바이러스는 세포를 뚫고 들어가야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세균은 스스로 생존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미국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Getty Images / 멀티비츠

그러다가 지난 5월 한국에 처음 왔는데,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한국 병원은 참 살기 좋았어요. 주로 기침할 때 나오는 침방울을 타고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는 저한테는 면역력 약한 환자에다 가족, 문병 온 사람까지 북적거리는 응급실과 병실이 낙원 같았죠. 순식간에 환자를 186명 만들었다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한국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제가 살고 있는 환자를 '음압 격리 병상'이라는 외로운 곳에 따로 입원시키더라고요. 특수 설계된 이 병실에선 공기가 흘러들기만 할 뿐, 병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요. 그러니 환자가 아무리 센 기침을 해도 침방울을 타고 병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죠. 의사와 간호사라는 사람들은 우주복 같은 옷에다 보안경까지 꽁꽁 싸매고 들어왔고요. 심지어 환자와 접촉했던 사람들도 되도록 집에서 혼자 지내며 2주일씩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거예요. 게다가 한국인들이 평소와 다르게 손은 또 어찌나 자주 씻고, 기침도 꼭꼭 가리고 하던지, 저희가 옮겨 다닐 길이 확 줄어 버렸어요. 저희는 이 사람 저 사람 갈아타면서 사는데, 옮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결국 한국 생활을 마치게 된 겁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면서 저희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 드리고 싶어요.

메르스 환자가 퇴원한 음압 격리 병실을 의료진이 소독하고 있어요.
메르스 환자가 퇴원한 음압 격리 병실을 의료진이 소독하고 있어요. /김종호 기자

과학자들은 저희 '바이러스'를 두고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에 있다고들 해요. 자손을 번식시킨다는 점에선 생물인데, 혼자서 먹고살 수 없는 점은 무생물이라나요? 사실 저희는 영양분을 먹고 소화해 활동할 에너지를 만드는 능력이 없어요.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핵산(DNA 또는 RNA)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로 된 단순한 구조만 갖고 있거든요. 살아 있는 세포를 뚫고 들어가 본격적으로 증식하기 전까지는 단백질 입자에 불과하다고나 할까요?

제발 세균(박테리아)과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저희와 달리 세포 구조를 갖춘 세균은 엄연한 생물이니까요. 세균 크기가 몇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미터) 정도라면, 저희(바이러스)는 그보다 훨씬 더 작은 20~30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예요. 저희를 일렬로 세워 1센티미터를 채우면 3만~75만 마리가 들어가죠. 인간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1892년 러시아 과학자 드미트리 이바놉스키가 '세균 여과기로도 걸러지지 않는 병원체'가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부터예요. 하지만 워낙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희를 눈으로 보게 된 건 1930년대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이후랍니다.

바이러스는 식물, 동물, 그리고 세균의 세포에서 살지요. 사람한테도 세포를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증식하기 때문에 저희를 죽일 '치료약'을 만들기가 몹시 어렵답니다. 저희를 공격하는 약은 결국 사람 세포까지 죽이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抗生劑)는 저희 같은 바이러스에는 안 들어요. 최근에는 에이즈 치료제처럼 바이러스를 죽이는 '항바이러스제'가 일부 개발되기는 했지만 제한적이지요.

하지만 인간에게 완패당한 바이러스도 있답니다. 백신 때문이에요. 천연두 또는 마마라고도 하는 두창 바이러스 알지요? 피부 발진이 돋아 겉보기에도 무서울 뿐만 아니라 한때 전 세계 사망자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사망률이 높았던 두창이 1979년에 퇴치된 것은 두창 백신 덕분이에요. 약화시킨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어 사람에게 주사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생기도록 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하면 그 바이러스에 진짜 감염되어도 인체에 재빨리 항체가 생겨 면역 시스템이 가동되고,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거든요.

끝으로 저희 가문 자랑 좀 할까요? 제가 속한 집안은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는 라틴어인데요, 왕관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저희 표면에 돌기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왕관처럼 생겼다고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었다네요. 2002~2003년 유행했던 사스(SARS) 바이러스도 저희 코로나 집안이에요. 사실 사람들이 자주 앓는 감기의 약 3분의 1은 저희 집안에서 일으킨다고 보면 됩니다. 어때요? 엄청난 가문이지요? 그렇다고 저희를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마세요. 저희 가족은 원래 사람에게 그다지 치명적이진 않았어요. 무작정 증식해 사람 세포를 다 죽여 버리면 저희도 살 곳이 없어지니 적당히 증식하거든요. 그렇지만 박쥐→낙타→인간에게 옮은 저(메르스)나, 박쥐→사향고양이→인간으로 이동한 제 친척(사스)처럼 동물에게서 인체로 옮은 바이러스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일 수 있어요. 저희 바이러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엄청나게 증식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동물에게서 새로 옮는 저희 바이러스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답니다.

이지혜 보건의료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