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남과 북 이렇게 달라요] 맹물 상인까지 진 치는 北 운동회, 이날만은 부모님도 지갑 열어요

입력 : 2015.10.21 03:10

운동회

요즘 학교마다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에요. 여러분도 공부를 잠시 쉬고 운동회서 신나게 뛰놀았죠?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거예요. 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선 북한의 인공기(人共旗)를 포함한 만국기가 운동장에 내걸려 논란이 되기도 했답니다. 여러분 또래의 북한 어린이들도 운동회를 하는지 궁금하다고요?

북한에도 운동회가 있어요. 북한 학교에선 1년에 두 번, 봄·가을에 운동회를 한답니다. 봄에는 '봄철소년운동회', 가을에는 '가을철소년운동회'라고 해요. 북한에서 운동회는 1990년대 후반에 생겼어요. 그 이전에는 원족(遠足)이나 등산(登山) 등의 행사가 있었고요. 원족은 한자 의미처럼 '멀리 걸어간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풍'과 거의 같은 거예요. 등산은 말 그대로 학교를 벗어나 산에 오르는 것이지요. 지역마다 차이가 조금 있지만 대체로 5월 중순이 등산 행사가 열리는 시기랍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어요. 오른쪽 사진은 북한의 운동회 종목 ‘미군 때리기’에서 어린이들이 미군 표적을 공격하는 장면이에요.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어요. 오른쪽 사진은 북한의 운동회 종목 ‘미군 때리기’에서 어린이들이 미군 표적을 공격하는 장면이에요. /이재우 기자·데일리메일
요즘 북한에선 운동회, 등산 중에서 하나만 골라 하는 학교가 대부분이에요. 부족한 식량 때문이지요. 등산보다 운동회를 선택하는 학교가 많은 이유는, 북한의 산이 거의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라 자연학습 장소로 미흡하기 때문이래요. 마땅히 놀러갈 장소도 없어서 운동회를 선호한다는 것이지요. 북한의 운동회는 봄철에는 소년단 창립일 6월 6일 전후에, 가을엔 9월 5일(교육절) 전후에 한답니다

운동회 형식은 우리와 비슷해요. 조를 편성해 운동 종목에 따라 시합을 하고, 장기자랑도 하지요. 조 편성에서 재미있는 건 명칭이에요. 예전엔 백두산·금강산·압록강·두만강 등 북한의 이름난 산과 강 이름을 붙였는데, 최근엔 총폭탄·방패·결사옹위(죽음을 각오하고 김정은을 지키겠다는 의미) 등 충성을 강조하는 명칭이 많아졌어요.

운동회의 종목은 밧줄 당기기, 눈 가리고 달리기, 씨름 등 여러 가지예요. 우리와 다른 종목은 '미군 때리기'가 대표적이에요. 미군이 그려진 표적이나 미군 복장 인형을 어린이들이 장난감총이나 막대기로 사정없이 때리는 종목이랍니다. 선생님, 학생 가리지 않고 모두 함께 나와 소리치고 춤추는 응원전은 남과 북 다르지 않죠? 운동회의 뜨거운 열정 또한 마찬가지고요. 북한 운동회는 대체로 오전에는 운동, 오후엔 장기자랑을 하는 순서로 진행돼요. 요즘엔 조별로 운동복을 통일하는 학교도 늘었다고 해요. 어떤 조에서 빨간색 운동복으로 하기로 정하면, 새로 사 입든 빌려 입든 빨간색 옷을 무조건 입어야 하지요. 그런데 학교마다 운동회를 하는 날짜가 대체로 비슷해서 빌려 입기 어려운 형편이에요. 경제적으로 힘든 집일수록 운동회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지요. 북한의 부모들은 운동회에서 제일 큰 골칫거리로 도시락을 꼽아요. 운동회는 1년에 한두번뿐인 특별한 날이라 엄마가 온갖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싸야 하기 때문이죠. 특히 선생님 도시락을 싸는 것도 꼭 해야 할 일로 자리 잡았죠. 먹고살기 힘든 북한에선 도시락 때문에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도시락으로 빈부격차가 한눈에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운동회 때 일부러 결석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도시락 때문에 운동회를 못 가면 엄마 아빠 마음이 무척 아프겠죠? 반면 잘사는 집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은 물론이고 중요 과목 선생님들의 도시락까지 싸간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북한의 학교 앞에는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등 각종 간식을 파는 상인들이 진을 쳐요. 심지어 맹물 상인도 있답니다. 운동회 때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시원한 물과 아이스크림을 많이 찾기 때문이지요. 이런 날엔 엄마 아빠도 지갑 여는 걸 주저하지 않아요. 사진사들 또한 운동회 때 앞다퉈 몰려와 사진 찍어주고 돈을 받는답니다. 북한은 아직 우리처럼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누구나 손쉽게 사진 찍을 형편이 아니거든요. 자, 이제 운동회 마치고 상을 받을 시간이에요. 북한이 가난하긴 해도 운동회 때 상은 준답니다. 이때 받는 상은 대개 혁명정신과 충성을 강조하는 책이나 공책, 볼펜 같은 것들이에요. 어때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요?



정명호·전(前)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