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사람을 표현한 조각상, 그 안엔 어떤 마음이?

입력 : 2015.10.16 03:14

[한국현대미술작가, 최종태展]

인간에게서 아름다움 찾던 조각가… 다양한 재료로 사람 형상 만들어
겉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 중시
인간의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아름다움의 최고점으로 생각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분 있어요. 바로 최종태(83) 조각가예요. 최종태는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았던 예술가랍니다. 돌이나 나무, 청동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평생 조각을 했지만, 재료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늘 사람을 만들었지요.

작품1 사진
작품1 - 최종태, 두 사람, 2012, 나무에 채색, 75×23×9.3㎝.

두 사람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마음이 되어 서 있는 작품 1 '두 사람'이라는 조각을 보세요. 몸의 밑동은 마치 꽃줄기처럼 푸르스름하고, 동그란 얼굴은 꽃잎처럼 발그레합니다. 혹시 사람 꽃이 아닐까 싶은데요? 작품 2 '얼굴'은 또 어떤가요. 구불구불하게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옆모습인데, 둥글둥글한 모양이 큼직한 꽃 한 송이 같아 보이네요.

작품2 사진
작품2 - 최종태, 얼굴, 1985, 브론즈, 83.5×10.5×46.5㎝.

'두 사람'은 나무에 색을 입혔는데, 꼿꼿하고 뻣뻣하게 서 있어서 그런지 언뜻 시골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물론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승보다는 훨씬 아담하고 귀엽지만 말이에요. 실제로 최종태는 장승이나 불상 그리고 성모상처럼 사람들이 의지하고 기도하는 대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중학교 시절 그는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을 읽었는데, 그 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향해 헌신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최종태는 만일 사람에게 종교적인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 인간을 그토록 아끼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는 "위대한 예술 작품은 종교적인 품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해요. 그래서 그는 불교 사상도 공부해보고, 민속신앙에도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나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요. 이후로도 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았어요. 그리고 삶과 예술, 종교가 만나는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답니다.

특히 최종태는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매력을 발견했어요. 작품 3 '생각하는 사람'을 보세요. 한 소녀가 손을 턱에 괴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없이 상념에 잠겨 있습니다. 새하얀 돌로 만들어진 소녀는 시끌벅적한 세상에 유일하게 고요한 존재이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정신을 대표하는 것 같아요.

작품3 사진
작품3 - 최종태, 생각하는 사람, 2012, 대리석, 70×27.5×43.2㎝,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작품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작은 사진)과 비교해보세요. 턱을 괴고 생각에 젖은 그 온화한 자태가 최종태의 소녀상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젊은 시절 최종태는 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고 고귀한 아름다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답니다. 그는 자신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꼭 눈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숨을 쉬는 것처럼 정신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끝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만 하다가 죽게 될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리석지는 않다고 그는 자부합니다. 아름다움을 탐구하다가 도중에 실패로 마감한다 해도, 본인 스스로는 물론이고, 세상에도 해로울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는 공자가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좋아했대요. 이 말은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보다는 속에 있는 정신이 조각이나 그림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는 인체를 조각하지만 작품을 통해 인간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고요한 마음 상태를 아름다움의 최고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최종태는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 한 걸까요?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또는 이슬람교이든, 무슨 종교이든 구애됨 없이 초월적인 존재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지요. 이 작가는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지만, 어떤 단계에서는 절대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고 말했어요. 아마 그래서 꾸준히 기도하는 겸허한 마음을 예술의 주제로 삼은 모양이에요. 그의 조각상에는 아름다움을 향해 늘 마음을 하나로 모아왔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깃들어 있습니다.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02)2188-6000

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