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교과서 여행] 둘레 400m 남짓의 작은 성, 흔적만 남았지만 몽골군 무찌른 전쟁터

입력 : 2015.10.14 03:12

[129] 처인성

우리 역사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어요. 고조선이 세워졌을 때부터 한나라의 침략이 시작됐죠.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패배한 수많은 전쟁은 우리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답니다.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의 침략이 잦았어요. 특히 몽골의 오랜 침공은 백성을 힘들게 했어요. 당시 몽골은 세계를 호령하던 큰 나라였어요. 칭기즈칸이 나타나 주변국은 물론 서아시아와 남러시아까지 몽골 대제국을 건설했거든요.

오늘 찾아갈 곳은 몽골군을 크게 무찌른 처인성 전투(1232년) 현장인 처인성입니다. 처인성 전투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고려로서는 오랜 몽골과의 전쟁에서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이기 때문이랍니다.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 장군이었던 살리타가 고려의 승장(승려로 이루어진 군대의 장수) 김윤후의 화살을 맞고 죽었거든요. 살리타는 칭기즈칸의 신임이 두터웠던 장군이었어요. 특히 활 솜씨가 뛰어났죠. 장군이 죽고 나자 몽골군은 기가 꺾인 채 어찌해볼 도리 없이 바로 후퇴를 했습니다.

처인성 전투를 실감 나게 표현한 그림(왼쪽). 경기도 용인시 처인성 유적지 입구에 몽골에 맞서 싸운 고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처인성 승첩기념비.
처인성 전투를 실감 나게 표현한 그림(왼쪽). 경기도 용인시 처인성 유적지 입구에 몽골에 맞서 싸운 고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처인성 승첩기념비. /한국학중앙연구원, 임후남 제공

몽골이 고려를 침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에요. 이전엔 고려와 몽골이 협력 관계였답니다. 거란족이 고려를 침공하자 몽골에서 지원을 해줬지요. 그런데 몽골은 도움받은 대가를 치르라며 공물을 바치라는 등 해마다 무리한 요구를 했죠. 고려에서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요구를 받아주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일이 벌어졌어요. 1225년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 저고여가 몽골로 돌아가다 압록강변에서 살해를 당하고 말았거든요. 그러자 몇 년 후인 1231년 8월 몽골에서는 이를 빌미 삼아 고려를 침공 했어요. 당시 몽골에서는 칭기즈칸이 죽고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제2대 황제가 되었죠.

몽골군이 수도 개경을 포위하자 고려는 일단 몽골과 화해하기로 했어요. 이에 몽골은 관리인을 보내 고려 정치에 간섭했어요. 참다못한 고려는 수도를 섬 강화도로 옮겼죠. 몽골군이 바다 건너 강화도는 쉽게 침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화가 난 몽골은 살리타 대장을 앞세우고 다시 쳐들어왔어요. 하지만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가 죽임을 당하자 일단 철수를 하죠. 이후 몽골군은 다시 침략해요. 그 과정에서 백성들의 생활은 황폐해졌어요. 오랜 전쟁은 결국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인정하기로 하고 끝이났지요. 몽골군은 1270년 고려가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긴 다음에 철수했답니다. 처인성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어요. 처인성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들판 한가운데 봉곳하게 솟은 산 같은 곳이 있는데, 이게 바로 처인성예요. 성이라고 해서 큰 성을 생각하고 가다가는 그냥 지나치기 쉽답니다. 처인성 유적 입구에는 고려의 승리를 기리기 위한 처인성 승첩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요.

역사학자들은 이곳이 고려시대 군대 창고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백제 때 토성을 쌓았다는 주장도 있고, 발굴 조사 당시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많이 나와 그때 쌓은 게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답니다. 처인성의 전체 둘레는 400여m. 금세 한 바퀴를 돌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작은 성에서 어떻게 수많은 몽골군과 싸웠을지 궁금해진답니다. 지금은 성의 흔적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처인성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도 해요.

처인성 언덕에 서보세요. 들판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몽골군과, 이에 맞서 싸웠던 우리 조상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죠?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 그 힘이 면면히 이어져 지금의 우리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랍니다.

[1분 상식] 승장 김윤후는 누구?

1232년 처인성 전투 때 몽골군의 살리타 대장을 화살로 쏘아 죽인 인물이에요. 그는 1253년 충북 충주성에서 몽골군에 맞서 70여 일간 싸우기도 했어요. 살리타 대장을 죽여 몽골군을 철수시킨 공로로 나라에서 큰 벼슬이 그에게 내려졌으나, 사양하고 나중에 충주산성을 방호하는 방호별감이 됩니다. 충주성에서도 김윤후 장군은 농민, 천민 가리지 않고 백성을 애국심으로 한데 모아 승리를 이끌었지요.

임후남·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