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어둠 속 비행… 그들은 사명감 위해 온 힘을 다했다
[88]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비행 조종사였던 경험으로 쓴 소설
야간 비행 위험 속 고뇌·갈등 있지만 사명감 다하며 헌신하는 주인공 다뤄
위험에도 맡은 임무를 해내는 자세,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용기서 나와
- ▲ ‘야간 비행’‘어린 왕자’를 쓴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비행기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5월 20일 메르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우리는 메르스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어요. 거의 매일 감염자와 사망자가 잇따랐고,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불안감이 증폭되었죠. 더구나 메르스는 가벼운 접촉으로 감염 우려도 있어 인파가 몰린 장소를 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이러한 위험에도 많은 의료진과 소방관,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들을 직접 대하며 치료하고 돌봤어요.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함께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최악의 사태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어린 왕자'로 잘 알려진 생텍쥐페리(1900~1944)는 소설 '야간 비행(1931년)'에서 이처럼 자신이 맡은 일에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어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야간 비행'을 하는 조종사들과 관리자의 고뇌와 갈등을 바탕으로 숭고하고 존엄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특히 이 작품은 생텍쥐페리 본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어요. 생텍쥐페리는 소설가이기 전에 비행기 조종사로서 항공사에 입사해 야간 비행을 경험했으며, 비행 중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한 뒤 구출된 적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자신의 상사였던 '디디에 도라'라는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해요.
'야간 비행'의 주요 사건은 항공사의 책임자 리비에르와 조종사 파비앵을 중심으로 진행돼요.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리비에르는 파라과이, 칠레 등에서 오는 우편물을 거두어 모은 뒤 유럽으로 보내는 책임을 맡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폭풍을 만나 교신이 두절된 채 항로를 이탈해 사라지고 말아요. 이착륙 시간을 엄수하고자 하는 리비에르의 방침을 따른 조종사 파비앵은 악천후 속에서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결국 안데스 산맥 부근에서 실종되었지요.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센 폭풍우를 이겨내야 하는 조종사 파비앵의 사투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고뇌하는 리비에르의 책임감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정당한가 혹은 부당한가? 나는 모른다. 내가 혹독하게 몰아치면 고장은 줄어든다. 책임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손대지 못하면 결코 누구에게도 손댈 수 없게 되는 불분명한 힘이다. 만일 내가 극도로 공정하게 행동한다면 야간 비행은 매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일이 될 것이다.'
리비에르는 냉혹할 정도로 비행기 정비사와 항공사 직원들의 작은 실수나 잘못에도 책임을 물었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직원들은 그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리비에르는 이를 잘 알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죠. 오히려 더욱 혹독하게 책임자로서 자신의 삶을 희생했어요. 비행 업무는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이에요. 특히 어두운 밤하늘을 오가는 야간 비행은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종사나 항공사 직원들 모두 아주 작은 실수나 방심도 경계해야 하죠. 그래서 리비에르는 직원들이 비난하더라도 자신이 엄격하고 공정해야만 조종사들이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 ▲ 그림=이병익
여러분은 사명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면 사명감이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에요. 그래서 보통 사명감이라는 말을 직업이나 숭고한 일에 쓰지요. 하지만 사명감을 거창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사명감은 책임감이라는 말과 상통해요. 책임감은 누구나 다 갖춰야 할 마음이에요. 학업이나 진로같이 자신을 위한 일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든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삶 역시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자네도 알겠지만, 삶에는 해결책이 없네. 움직이는 힘만 있지.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오는 거야."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갈등해요.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해결책이나 정답을 찾기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게 하는 그 힘을 만들어낼 것을 강조해요. 그가 찾은 움직이는 힘이란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복은 물론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가치 있는 삶이자 해답이라고 전하고 있어요.
#이야기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용기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맨 나중에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만약 메르스 사태 때 의료진과 소방관들이 자기 건강과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들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나'보다는 '남'을 위해 희생할 '용기'를 가졌기 때문일 거예요.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용기를 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이들이 있기에 '나'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거겠죠. 주어진 사명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존엄하고 위대한 인생의 한 모습이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소설 ‘야간 비행’에 나오는 리비에르와 같은 책임을 맡게 된다면 직원들과 조종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봐요. 그리고 우리가 ‘용기’ ‘책임’ ‘희생’ 등의 덕목을 갖춰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