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거북 등딱지에 새겨진 고대 중국의 역사

입력 : 2015.10.09 03:52 | 수정 : 2015.10.09 03:53

[한자의 유래]

짐승 뼈 등에 새겨진 '갑골문자', 청나라 왕의영 등이 수집·연구해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왕조 실체 밝혀… 한자의 기원으로도 인정받아요

오늘(9일)은 한글날이에요. 조선시대의 학자 정인지는 "한글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 반나절이면 배울 수 있고, 미련한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만큼 배우기 쉽고, 어떤 소리든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대표 문화유산이죠. 특히 한자를 배우다 보면 한글의 우수성을 새삼 느끼게 되지요. 세상 만물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한자를 배우는 건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글이 소리를 표기한다면,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이지요. 한번 익히고 나면 어려운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그래서 최근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한자어가 어휘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한자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요?

한자의 기원으로 알려진 갑골문자 사진
한자의 기원으로 알려진 갑골문자. /뉴시스

19세기 말, 중국은 종이호랑이 신세였어요. 아편전쟁에 패배하고 나서 끊임없이 제국주의 국가의 간섭이 이어졌기 때문이에요. 전쟁에 질 때마다 배상금을 지불하고, 새로운 개혁을 할 때마다 예산이 필요하니 날마다 늘어나는 것은 세금이었어요. 백성의 생활은 고단했죠. 새로운 변화를 꿈꾸던 사람 중에는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문맹이 많은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세상의 중심이라고 외치던 자존심은 허울만 남고 기울어 가고 있었죠.

은나라가 남긴 유적에서 출토된 갑골문자(위).갑골문자로 전설로만 알려졌던 중국 고대 은나라(상나라)의 존재가 드러났어요.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였던 주왕과 그가 사랑한 달기의 모습(아래).
은나라가 남긴 유적에서 출토된 갑골문자(위).갑골문자로 전설로만 알려졌던 중국 고대 은나라(상나라)의 존재가 드러났어요.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였던 주왕과 그가 사랑한 달기의 모습(아래). /위키피디아

1899년, 지금으로 치면 청나라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국자감에는 많은 학자가 모여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었어요. 그중 가장 우두머리 격인 왕의영은 옛 글자를 연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의 집에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친구가 함께 살면서 연구를 했다고 해요. 당시 왕의영은 말라리아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특효약이라고 알려진 용골(용의 뼈)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지요. 따지고 보면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인데, 뼈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운명이었는지 멀리 북경의 한약방에서 어렵게 용골을 구할 수 있었어요. 하남성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발견한 뼛조각들을 용골이라는 이름으로 한약방에 판 것이었죠. 귀한 용골을 가루로 만들려는 순간, 왕의영과 친구 유악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뼛조각의 편편한 면에서 오래된 글자가 보이는 거예요. 칼로 새겨서 각지고 얇긴 했지만, 분명히 글자였어요. 그 후 이들은 용골을 수집하고 연구했어요. 용이라고 알려졌었지만, 거북의 등딱지나 배딱지(갑·甲) 혹은 소, 말, 사슴의 뼈(골·骨)였어요. 여기에 얇게 새겨진 칼자국은 오래된 글자인 것으로 밝혀졌어요. 한자의 기원이 된 갑골문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지요.

갑골문자의 연구를 통해 전설로만 알려졌던 상(商) 또는 은(殷)나라의 존재가 드러났어요. 연못을 술로 가득 채우고 주변의 나무에는 온통 고기 안주를 걸어놓았다는 '酒池肉林(주지육림)'이라는 사자성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전설 속 주왕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달기라는 미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은은 주왕의 폭정을 못 견디고 결국 주(周)나라에 멸망하는데요, 문제는 유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전설 속의 나라로 남게 된 거예요. 수도를 여러 번 옮겨다니던 때를 상나라, 수도를 은으로 옮긴 다음 통치하던 때를 은나라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런데 갑골문자를 연구하던 중 처음 용골을 발견한 그곳이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이었음이 밝혀졌어요. 이곳을 은나라가 남긴 유적이라는 의미로 은허라고 부르고 있죠. 은허에서는 세련된 청동기와 갑골문자, 왕궁 터 등이 발견되었어요. 유물, 유적과 갑골문자 기록을 통해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의 실체가 새롭게 알려졌어요.

왕의 무덤 옆에서는 많은 사람의 시신도 한꺼번에 발굴되었어요. 왕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왕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 산 사람을 순장하는 풍습을 보여주는 거죠. 당시 사람들은 왕은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왕이 주관하여 점을 치곤 했죠. 왕이 사냥을 나갈 때, 병에 걸렸을 때, 전쟁을 할 때, 아기를 출산할 때, 농사의 풍흉이 궁금할 때, 소풍을 갈 때, 사람을 만날 때도 점을 쳤어요. 제사를 지내며 점을 칠 내용을 말하고, 거북이 배딱지나 등딱지, 소 어깨뼈에 작은 구멍을 뚫어 불로 지졌어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구멍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방향과 모양, 색깔을 보고 하늘의 뜻을 읽는 거예요. 그러고는 점친 내용을 칼로 새기는 거죠. 그 때문에 갑골문자의 대부분은 제사를 담고 있어요. 뼛조각을 종이 삼아 기록한 중국 최초의 역사 기록이 되었어요.

세종대왕 동상에 새겨진 훈민정음. 표의문자인 한자와 달리 훈민정음은 표음문자로 꼽혀요.
세종대왕 동상에 새겨진 훈민정음. 표의문자인 한자와 달리 훈민정음은 표음문자로 꼽혀요. /Getty Images Bank

갑골문자와 은허의 발견으로 중국인들은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제국주의 국가에 짓밟히면서도 그 어려운 한자를 지켜낸 것은 그 때문이었죠. 우리나라 역시 한글의 우수한 과학성을 알리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건 일제강점기였어요. 문자는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유산이에요. 물론 한글은 세계 어떤 문자에 견주어도 한 수 위이지요.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