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학문을 익힌다 한들… 너무 큰 산이 가로막고 있구나"
입력 : 2015.09.30 03:09
[86] 이문열 '시인'
소설 주인공 조선 방랑시인 김삿갓, 신분의 한계로 사회 진출 좌절하며 사회에 대한 울분을 시로 표현했어요
불합리한 제도로 능력 못 펼치는 모습… 현재 청년들의 힘든 삶과 닮아 있어
2017년 사법시험 폐지를 앞두고 요즘 논쟁이 한창입니다. 당초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법조인 양성 제도를 개선해 국민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확대하고 사법시험에 매달려 사는 청년을 줄이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 로스쿨은 높은 등록금과 '스펙' 위주의 선발 방식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어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그저 옛말일 뿐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아요. 높은 사교육비와 청년 실업으로 계층 이동이 과거처럼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니트족'이란 말까지 생겨나고 있어요. 현재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 경제구조에 기인한 것이라면 과거에는 불합리한 사회제도가 재능 있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어요. 오늘 소개할 소설 '시인'을 통해 조선 후기 청년들이 마주했던 사회상을 함께 살펴보아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그저 옛말일 뿐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아요. 높은 사교육비와 청년 실업으로 계층 이동이 과거처럼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니트족'이란 말까지 생겨나고 있어요. 현재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 경제구조에 기인한 것이라면 과거에는 불합리한 사회제도가 재능 있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어요. 오늘 소개할 소설 '시인'을 통해 조선 후기 청년들이 마주했던 사회상을 함께 살펴보아요.
- ▲ /그림=이병익
작가는 이러한 설화와는 달리 황해도로 피신해 숨어 살던 시절 이미 조부 김익순의 존재와 그의 집안이 몰락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서술해요. 어린 나이에 형과 함께 대역죄인의 자손이 되어 노비였던 이의 아들로 3년 동안 숨어 살아야만 했다는 것이죠. 3년 후 사면되어 친부모와 살게 되었지만, 역적의 자손이라는 오명은 그들을 여주에서 가평으로, 가평을 떠나 평창, 영월로 쫓기듯 살게 했어요. 그런 중에도 김병연은 글공부를 놓지 않죠. 그것은 양반으로서 가졌던 그의 정체성과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지요. 작가는 백일장에 나가서도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전제하며 당시 병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어떻게 익힌 학문인데 여기서 이렇게 돌아선단 말이냐. 이게 비록 시골의 하찮은 백일장이라 해도 한번 밀리면 소과, 대과에서도 차례로 밀리게 되고 말 것이다. 서울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영영 가망 없는 꿈이 되고 만다. (중략) 나는 쓰겠다. 우리 시대 지상 규범 중에 하나인 효도의 대상, 내 할아버지 김익순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다음 세대의 권리를 행사하겠다. 그 지워지지 않는 행적과 시비를 향해 객관의 붓을 들겠다."
#이야기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써 백일장에서 장원이 되었지만, 김병연은 결국 이를 후회하며 상을 받지 않아요. 그 후 과거 시험에도 응시했지만 부패한 과거제도와 매관매직이 판을 치는 현실, 역적의 자손이라는 굴레는 그를 좌절하게 하지요. 19세기 조선은 왕의 외척과 노론 명문가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어요. 이를 세도정치라 부르는데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잇따른 기근과 질병으로 힘겨운 백성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여러 곳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란의 원인이 됐어요. 당시 청년들에게는 과거 시험만이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통로였는데, 신분에 따라 응시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가 많았고 시험이 불공정하게 치러져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어요.
- ▲ 한국 문학계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이문열. /오종찬 기자
"아직도 자네의 시는 그러한가? (중략) 충성을 드러내고 효도를 드러내고 의로움을 드러내고 분별을 드러내고 재주를 드러내고 학식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인가? (중략) 시인은 바로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난 자다. 그 모든 것을 떨쳐 버린 후에야 참다운 시인이 난다."
스물다섯 나이의 김병연은 취옹이 말한 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직 선비에게 주어진 숙명이기 때문에, 또 벼슬을 얻기 위해 공부했고 시를 썼던 그에게 무엇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고 쓰임에 연연하지 않는 "제 값어치 홀로 우뚝한 시"라는 것은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었어요. 그러나 그의 시는 점점 취옹이 말하던 시의 모습을 닮아가지요. 파격적인 형식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재치 있고 기발한 문장을 거쳐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관조를 드러내는 시를 썼죠. 결국 김병연은 세상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인으로 삶을 마감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백일장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