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고대 이집트 미녀 왕비像… 언제쯤 고향 갈 수 있을까
입력 : 2015.09.25 03:09
[네페르티티 흉상]
네페르티티 흉상, 20세기 독일이 발견
당시 유물에 대한 소유권 기준 모호해 아직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고 있어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의 왕 이크나톤
왕비 네페르티티와 태양신 섬기며 종교개혁으로 왕권 강화 노력했어요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어요. 기다리는 가족을 만나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크지요. 한 사람의 역사에서 고향과 가족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한 나라의 역사에서 문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문화재는 국가의 정체성이며 자존심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피라미드 하면 누구나 이집트를 떠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이집트는 수없이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인데요. 가장 돌려받고 싶어 하는 문화재 목록에는 영국에 있는 로제타석(고대 이집트의 석조 유물)과 함께 독일에 있는 네페르티티 흉상이 있어요.
독일 베를린의 박물관에 있는 네페르티티 흉상은 '베를린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지녔어요. 높게 추어올린 머리 아래로 길고 매끈하게 뻗어 내린 목선, 짙은 눈썹과 흔들림 없는 시선, 날렵한 턱 선은 보는 순간 우아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죠. 붉은 입술과 조화를 이루는 목걸이 장식에서 화려한 궁중 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손꼽히는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어쩌다가 독일로 왔을까요?
- ▲ ①독일 베를린 노이에스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손꼽히는 네페르티티의 흉상. ②고대 이집트 제 18왕조인 이크나톤과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를 담은 예술품. ③태양의 신을 섬기는 이크나톤과 네페르티티. /Corbis / 토픽이미지
이 모든 종교 개혁에 함께했던 사람이 바로 왕비인 네페르티티였어요. 이름에서 새소리 같은 울림이 느껴지지요? '미인이 온다'는 뜻이래요. 부부가 동등하게 표현된 부부 조각상이 많이 제작된 당시 분위기로 보아 왕과 왕비는 공동통치를 하며 아톤을 섬겼을 거예요. 아마르나의 도시 설계도 함께했겠죠. 아마르나 중앙에는 왕궁과 신전이, 그 아래에는 귀족의 주택 그리고 남쪽 끝에는 노동자들의 주거지가 만들어졌어요. 아몬 신전의 재산을 평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귀족에게는 오히려 세금을 내도록 했죠. 이전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왕실의 조각을 담당하는 투트모세의 공방에서는 쉴 새 없이 뚝딱거리며 아톤과 이크나톤을 위한 물건을 만들어냈죠. 아름다운 네페르티티의 흉상도 이곳에서 만들어졌어요.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의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냈죠. 이크나톤의 조각상도 만들어졌어요. 생생하게 만들어서였을까요? 네페르티티의 왼쪽 눈은 눈동자가 없는 형태로 미완성되었어요. 심하게 길쭉한 얼굴, 툭 튀어나온 입술, 홀쭉하게 들어간 볼,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돌출한 턱, 게다가 볼록한 배. 이건 이크나톤의 모습이었답니다. 아마르나 시대의 이집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감각의 시대였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성급했을까요? 종교 개혁에 매진하는 사이 외적의 침입은 계속되었어요. 귀족과 신관들의 불만은 하늘 높은 줄 몰랐죠. 결국 이크나톤의 불행한 죽음 후에 왕위는 투탕카텐에게 이어졌어요. 어린 나이에 즉위한 그는 다시 '아몬(아멘)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의 '투탕카멘'으로 이름을 고쳤어요. 동시에 이크나톤의 모든 개혁은 내팽개쳐졌어요. 아마르나는 빠른 속도로 황량한 사막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어요.
19세기 초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해독하고 나서 이집트는 유럽 문화의 뿌리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많은 제국주의 열강이 찾아와 유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요. 1912년 독일의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아마르나의 투트모세 공방 유적에서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발굴해냈어요. 당시의 관행은 유물을 발굴한 나라와 소유한 나라가 반반씩 나누는 것이었죠. 엄격한 기준에 따라 문화재 반출 허가증을 주는 시절이 아니었죠. 만약 이집트에서 이 유물의 가치를 알아봤다면 독일에 줄 리가 만무했을 거예요. 어쨌든 독일은 흉상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어요. 이집트의 반환 요구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네페르티티의 아름다움에 반한 히틀러가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거든요. 제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나치가 숨겨둔 소금 광산 속에서 발견된 흉상은 아직도 독일의 박물관에서 버젓이 전시되고 있어요.
직지심체요절, 왕오천축국전, 몽유도원도를 비롯해 우리에게도 해외를 떠도는 문화재가 7만점이 넘어요. 불법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에 다 함께 힘을 모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