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키즈

[그림으로 보는 자연]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누르스름한 배, 어떤 의미 있을까

입력 : 2015.09.24 03:08

며칠 있으면 만나는 추석에는 먹을거리가 풍성해.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려. 과일 가운데 조율이시, 즉 대추(棗), 밤(栗), 배(梨), 감(枾)을 꼭 올려. 지금이 제철인 이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씨앗이 하나인 대추는 왕을, 밤알이 셋인 밤은 3정승을, 씨앗이 6개인 배는 6판서를, 씨앗이 8개인 감은 8도 관찰사를 뜻해서 조상이 후손 잘되란 뜻이거든.

이뿐만이 아니야. 대추는 헛꽃이 없이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가 열려. 그래서 열매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많이 열리지. 조상은 후손들이 번성하길 바랐지. 밤은 심으면 생밤인 채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 그러다가 땅 위 나무가 자라 씨앗을 맺어야만 씨밤이 썩어. 그래서 후손과 조상이 서로 연결된 모습 같다고 생각했어. 또 뾰족뾰족 가시로 밤알을 보호하던 밤송이가 아람이 다 익으면 스스로 툭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같다고 여겼어. 밤을 보면서 부모님 은혜를 기억하란 뜻을 담았지.

배 일러스트
그림 = 손경희(호박꽃‘내가 좋아하는 과일’)

그럼 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배에 대해 살펴보며 각자 한번 생각해 보렴. 배는 여러 나라에서 나는데 조금씩 모양과 맛이 달라. 미국, 유럽 등 주로 서양에서 재배되는 서양배는 호리병처럼 생겼어. 단맛이 덜해서 설탕에 재거나 졸여서 요리할 때 써. 옆 나라 중국에선 우리나라 큰 사과만 한 배랑 돌배처럼 작은데 껍질이 부드러워 손톱으로 벗길 수 있는 콩배를 많이 먹어. 일본과 우리나라 배는 남방형 동양배라고 해. 우리나라 배는 크고 달기로 유명해.

서양배는 초록빛을 띤 것도 있지만, 배라고 하는 건 대체로 누르스름한 껍질에 하얀 점이 있어. 씨앗을 품은 과일은 대개 빛깔이 고와. 그래야 다른 동물의 눈에 띄어 열매살은 먹히고 씨앗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쉬우니까. 그런데 배는 알록달록하기보단 흙빛에 가까워. 동물이 발을 딛고 사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흙은 예부터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어. 조상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 물질이면서 중심이 된다고 생각했지. 조상은 배 껍질이 흙 색깔과 비슷해서 차례상에 올렸을까?

배를 잘라 볼까? 배 속살은 하얗고 즙이 많아. 옛날에는 흰색을 신령한 색이자 불멸을 뜻한다고 여겼어.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불렀지. 하얀 열매살은 달고 즙이 많아. 수분이 90% 가까이 되니까 다른 과일보다 진짜 많기는 많은 셈이지. 그런데 열매살 한가운데는 딱딱하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어. 이런 모습이 심지가 곧은 충성스러운 사람처럼 보였을까?

배는 기관지에 특히 좋아. 가래와 기침을 없애고 목이 쉬었을 때, 목감기에 도움이 돼. 소화도 잘되게 하고, 화장실도 잘 다녀오게 하여 주지. 어쨌든 봄에 피웠던 앙증맞은 하얀 꽃이 이렇게 커다란 배로 자란다니, 배나무는 정말 대단해!

 

박윤선·생태교육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