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인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복… 국민을 울린 그의 '도전 정신'

입력 : 2015.09.24 03:08

[4] 고상돈

얼마 전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매킨리(해발 약 6190m)'의 이름이 '데날리'로 바뀌었어요. 사실 데날리는 이 산의 원래 이름이었죠. 데날리에 자리 잡은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 수천 년 동안 그렇게 불렀거든요. 데날리는 원주민어로 '높은 곳' '위대한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알래스카가 미국 땅이 되고 30년쯤 흐르고, 미국의 한 금광업자가 원주민이 지은 데날리란 이름을 매킨리로 바꿨어요. 그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매킨리의 이름을 따서 매킨리 산이라 불렀고, 이후 매킨리가 2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공식화됐죠. 이 때문에 매킨리 산은 '문화 제국주의'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어요. 약 40년 전부터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매킨리를 데날리로 바꿔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어요. 그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다 지난 8월 30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원주민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어요. 마침내 데날리 산이 제 이름을 찾게 된 것이지요.

산악인 故고상돈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태극기를 높이 치켜든 모습.
산악인 故고상돈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태극기를 높이 치켜든 모습. /고상돈 기념사업회 제공

데날리 산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올랐던 산악인 고상돈(1948~1979)이 마지막 숨을 거둔 산이 바로 데날리였어요.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던 고상돈은 2년 후 데날리 정상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추락하여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는 큰 슬픔에 잠겼지요. 2년 전 그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른 일은 온 국민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었거든요.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고상돈의 등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나라가 되었고요. 바로 이전 해에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것에 이어 경사가 또 생긴 것이지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고상돈을 비롯한 대원들을 모두 청와대로 초청해 체육훈장을 걸어 주고 격려했답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상돈은 청주에서 대학교에 들어가 산악반 활동을 시작했어요. 대한 산악 연맹 회원으로 활동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에베레스트 원정길에 오르죠. 지금이야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이 큰 이슈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에베레스트 정복은 대한민국 산악계의 최대 숙원이었어요. 또한 몇 해 전에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우리 산악인이 16명이나 목숨을 잃어서 나라 전체에 큰 충격을 준 터였습니다. 때문에 에베레스트 정복은 산악계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의 소망이 되었지요. 고상돈은 에베레스트로 떠나기 전에 "내 금시계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니, 혹시 죽게 되면 꼭 시신에서 시계를 찾아다 어머니께 전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답니다.

드디어 1977년 9월 15일. 1차 공격조가 정상 100m 아래에서 눈보라 때문에 발길을 돌리고, 고상돈이 2차 공격조로 투입됩니다.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막내였지만 튼튼한 체력과 등반 기술이 누구보다 뛰어났지요. 그가 정상을 향해 출발하고 9시간 가까이 흐르고 나서, 마침내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졌습니다.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 전체가 기뻐했고, 그가 에베레스트 정복에 성공한 9월 15일은 '산악의 날'이 되었죠.

고상돈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산악인들이 등장합니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의 정상에 모두 오른 엄홍길, 히말라야 14좌뿐 아니라 남극점과 북극점까지 도달한 박영석 등도 고상돈의 뒤를 따른 후배들이었습니다. 고상돈은 비록 31살의 젊은 나이에 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발자취는 지금도 많은 이의 가슴 속에 남아있답니다.


[1분 상식] 문화 제국주의란?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문화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해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글을 못 쓰게 하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강가 강' 을 '갠지스 강'으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여러 나라에 들어가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입맛과 문화를 바꾸어놓는 것도 문화 제국주의라고 부른답니다.

구완회 작가·'재미있다! 한국사'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