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유산 탐방]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 전쟁으로 훼손됐지만 그 위용은 남아 있어
[26] 후에 기념물 복합지구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고대 유적지 팔미라의 소중한 세계유산을 잇달아 파괴했어요. 바알샤민 신전과 벨 신전 등 2000년이 넘는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를 간직했던 유산들이 훼손돼 전 세계가 공분에 휩싸였지요.
안타깝게도 전쟁이나 분쟁으로 아름다운 유산이 파괴되는 일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벌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Hué)의 문화유산을 들 수 있어요. 베트남 중부에 있는 후에는 이 땅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가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한 곳이에요. 고대 동양철학과 베트남 전통에 따라 설계된 아름다운 왕궁과 견고한 성곽, 일곱 개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왕릉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요. 하지만 후에 지역의 문화유산은 1946년 인도차이나전쟁과 1960년 베트남전쟁 등을 겪으면서 처참하게 훼손되고 말았어요. 유네스코와 베트남 정부의 노력으로 지금은 많은 유산이 복원되었지만,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아 전쟁의 아픔을 일깨워 줍니다.
- ▲ 베트남 후에 기념물 복합 지구의 입구. /Corbis / 토픽이미지
후에는 1802년부터 1945년까지 통일 베트남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어요. 왕궁 내부를 요새처럼 보호하는 성곽은 응우옌 왕조의 첫째 황제였던 지아 롱 황제 시대에 세워졌어요. 지아 롱 황제는 1만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30여 년에 걸쳐 수도 후에를 건립했어요. 왕궁을 둘러싼 거대한 성벽은 많은 이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졌지요. 지아 롱 황제는 이 거대한 성벽을 따라 해자를 만들어 외부의 침입을 철저히 막았답니다.
폐쇄적으로 보이는 성벽과는 대조적으로 왕궁의 정문인 응오몬(Ngo Mon)을 지나면,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서 지은 디엔타이호아(Dien Thai Hoa·태화전)가 보입니다. 이곳은 예식이나 접견을 하던 곳으로, 현재 열세 명의 황제가 앉았던 옥좌가 전시되어 있지요.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태화전과 달리 왕실의 거주지였던 뚜깜타인(Tu Cam Thanh)은 아직도 많은 전각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어요.
유네스코는 전쟁으로 파괴된 '후에 기념물 복합 지구'의 복원을 위해 1970년대에 전문가를 두 차례 파견했고, 1981년에는 음보우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베트남을 직접 방문해 후에 지역 문화재의 복원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어요.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네스코와 베트남 정부의 관심과 지원 덕분에 폐허가 되었던 후에의 많은 유산이 복원되어 다시 세계인에게 베트남 봉건 제국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찬연했던지, 유네스코는 이 유서 깊은 왕도를 향해 "도시라는 형식을 빌린 한 편의 아름다운 시"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후에 지역에 있는 왕궁과 도시 유적들은 1993년 베트남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파괴되었던 후에가 베트남 정부와 국제사회 등 많은 이의 노력으로 과거의 찬란한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팔미라의 유적도 언젠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봅니다.
[1분 상식] 해자(垓字)란 무엇인가요?
해자는 성곽이나 고분 주위를 둘러싼 도랑을 말합니다. 주로 외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외에 식수를 확보하는 등의 생활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답니다. 해자는 근처에 있는 지형을 활용해 자연 하천 그 자체를 해자로 삼거나 땅을 파서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들여 만들었어요. 해자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성곽과 도성 곳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