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자유롭게 꿈꾸다, 한계·경계 없는 예술 속에서

입력 : 2015.09.18 03:08

[키아, 환상과 신화展]

네모난 틀로 이뤄진 캔버스 벗어나 허공 향해 자유롭게 손짓하는 남자
다양한 각도서 바라본 얼굴 등…
기존의 어떤 방식에도 갇히지 않고 다양한 색채·기법으로 그려냈어요

미술의 세계는 늘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답니다. 여기에도 아무나 쉽게 흔들지 못하는 전통이 있고, 정해진 규범이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새로운 시도를 해서 돌처럼 굳어진 과거의 생각을 뒤엎고, 많은 이에게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힘겨운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용감하게도 가장 앞줄에 나서서 싸우는 사람처럼 용감해야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혁신적인 미술인을 전투 용어를 빌려 '아방가르드(전위대: 앞서 싸우는 부대)'라고 부릅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쯤에 서양미술 역사에서 아방가르드의 역할은 아주 컸답니다.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좀 색다르고 특별한 미술작업을 하고 싶어.' 이렇게 생각했던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승리 덕분에 현대미술은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났고, 새롭고 자유로워졌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처음에 혁신적으로 보였던 것은 금세 익숙해지더니 심지어 구식으로까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또다시 새로워지기 위해 과거의 방식을 하나씩 하나씩 계속해서 버려야만 했어요.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 작품 속에서 사람은 점점 등장하지 않게 되었어요. 인물은 너무 흔한 주제였으니까요. 풍경 그림도 점차 사라졌고, 예전 그림처럼 여러 가지 색채를 사용해서 어떤 물건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일도 드물어졌답니다. 생김새만 봐서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형태와 개념만이 아방가르드 화면에 남게 되었을 무렵,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미술가들이 등장합니다. 아방가르드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이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 산드로 키아(1946~)도 끼어 있었어요. 키아가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화가랍니다.

키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림으로 가득 찬 세상은 한계와 경계가 없는 자유의 세상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머리와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과거이든 전통이든, 꿈이든, 또는 우연이든 상관없이, 그 어떤 것에도 한계를 두지 않는 표현의 자유 말입니다.

작품1 사진
작품1 - 산드로 키아, 형상, 2003, 캔버스에 유채, 55x46cm.
작품1을 보세요. 남자의 앞쪽에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놓여 있어요. 캔버스라는 네모는 남자가 사는 세상보다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남자는 그 작은 네모 안에 그림을 그려 넣으려다 말고 손을 높이 뻗어 허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요. 그러자 세상은 사방팔방 뚫려 있고, 네모라는 경계로 구획되지 않은 멋진 캔버스로 화가의 상상은 생각의 틀을 훌쩍 넘어섰어요.

작품2를 볼까요? 제목이 '기습'이에요. 초록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손을 한껏 높이 들어 남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려 하고 있어요. 무슨 상황일까요? 일상 속에서 생각하면 이상하고 어이없는 사건이에요. 다 큰 남자가 여자에게 바지를 벗긴 채 기습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남자는 창피한 듯 얼굴을 가리고 있고,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양 볼기는 빨개졌어요. 천 자락 같은 것들이 남자와 여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데, 특히 치켜든 여자의 손 쪽에는 힘찬 한 줄기의 천 자락이 펄럭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 속에는 운동감이 넘쳐나요. 초록과 파랑의 두 인물이 춤을 추듯 둥둥 떠 있고, 울긋불긋한 배경이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이건 혹시 바닷가의 파도를 표현한 것 아닐까요? 철썩철썩 소리 내며 밀려드는 파도가 마치 철썩철썩하고 한쪽에서 엉덩이를 치고, 그 힘에 밀려 맥없이 돌아선 사람의 모습으로 느껴지네요.

작품2, 3 사진
(사진 왼쪽)작품2 - 산드로 키아, 기습, 2009, 캔버스에 유채, 200x150cm. (사진 오른쪽)작품3 - 산드로 키아, 알 수 없는 얼굴, 2007, 캔버스에 유채, 50x40cm.

이번엔 작품3의 얼굴을 봅시다. 만화경 앞에서 본 내 얼굴인가요? 얼굴을 그리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가만 보니 내 얼굴은 하나가 아니에요. 얼굴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면 각각 다른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기분에 따라 표정도 바뀌고,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 얼굴을 생각하고 있을 때도 있지요. 하루 동안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얼굴인지도 몰라요. 이 얼굴들처럼 키아의 상상은 그림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 같아요. 어쩌면 키아가 말하는 자유로운 그림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볼 때마다 의미가 계속 달라지는 그림이 아닐까요.

문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666-3539



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