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오직 사랑만으로 살던 그녀, 과연 행복했을까

입력 : 2015.09.16 03:11

[84]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쉽게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올렌카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의지하며 살다 그들 떠나자 주체적으로 살지 못해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방·자신의 삶 서로 존중하며 지켜줄 때 이뤄져요

세계 3대 단편소설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 사진
세계 3대 단편소설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 /위키피디아

'헬리콥터 맘'이나 '잔디깎이 맘'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헬리콥터 맘이란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곁을 맴돌며 성인이 된 자녀까지 챙겨주는 부모를 말해요. 잔디깎이 맘이란 미국판 헬리콥터 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잔디 깎는 기계처럼 자녀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걸 모두 제거해 주는 극성 부모를 말해요. 헬리콥터 맘이나 잔디깎이 맘 모두 자녀를 너무나 사랑해서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평생을 사랑밖에 모르고 살아온 여인, 올렌카의 삶을 보니 과연 헌신적인 사랑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에서 올렌카라는 주인공을 통해 쉽게 사랑에 빠지지만, 일단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완전히 몰두하고 동화되어 그에게 헌신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어요. 체호프는 미국의 '오 헨리', 프랑스의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힌다고 해요.

올렌카는 "통통한 장밋빛 뺨과 검은 점이 하나 있는 부드러운 목덜미, 그리고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얼굴에 떠오르는 티 없는 미소"를 가지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여운 여인'이라고 불렸죠. 그런 올렌카가 늘 불평불만에 절망적인 말만 하는 극장 지배인 쿠킨의 불행을 동정한 나머지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와 결혼하고 나서 그녀는 연극과 극장에 관한 남편의 모든 견해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살았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쿠킨이 죽자, 석 달 뒤에 목재상인 푸스토발로프와 재혼했어요. 이제 그녀의 관심은 온통 목재로 옮겨갔어요.

남편의 생각은 바로 아내의 생각이었다. (…) 남편은 오락이라곤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공휴일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그래서 아내도 마찬가지로 지냈다.

"날마다 집하고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있지만 말고, 극장 같은 데라도 좀 다녀보지 그러세요?"

사람들이 그럴 때면 그녀는 아주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우스꽝스러운 구경이나 하고 다닐 여유가 없답니다. 극장 같은 데를 가 봤자 뭐 하나 이로울 게 있어야죠."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6년 후 푸스토발로프가 감기로 죽자 올렌카는 다시 혼자가 되었어요. 6개월 후 이번에는 수의사 스미르닌과 관계가 깊어졌고, 역시나 이번에도 그녀의 관심은 수의사와 관련된 것들로 변해갔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미르닌과도 헤어지게 되었고, 이제 그녀는 사랑할 대상을 모두 잃어 정말로 혼자가 되고 말았어요. 더구나 '귀여운 여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젊고 아름다운 모습까지 잃게 되자 우울하고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말아요. 그러던 어느 날 스미르닌이 아들 사샤를 데리고 나타나자 이제 올렌카의 모든 관심은 사샤에게 집중되었고 그녀는 사샤를 돌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되었어요. 짐작했듯이 이번에 그녀의 입에선 오로지 교육에 대한 이야기만 쏟아졌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가 불행했던 것은 이제 무슨 일에나 자기 의견이란 것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자기 주위의 사물은 여전히 눈에 띄었고, 또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전혀 가질 수 없었고,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올렌카가 사랑했던 대상은 그 자체로 이미 그녀에게 모든 것이었어요. 모든 것을 던지고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에 그 시간만은 행복했겠지만, 그 사랑이 떠나고 홀로 남은 올렌카는 자기 자신마저도 잃게 되었어요. 그녀는 누구의 아내, 어머니로서만 살았을 뿐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기 때문이죠.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을 받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에요. 하지만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거나 의존하는 사랑은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지요.

#이야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일회적이고 가벼운 사랑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아요. 더구나 사랑과 결혼이 외모나 경제력 등 조건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에요. 늘 사랑을 갈구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사랑보다는 조건을 택하거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메마른 삶의 태도도 불행을 낳을 수 있어요.

작년 겨울 개봉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어요. 76년 간을 부부로 살아온 백발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요. 할아버지는 한겨울 밤에 할머니가 무서움을 타지 않도록 재래식 변소 밖을 지키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해요. 노부부는 봄에는 물장난 놀이를, 여름에는 꽃놀이를, 겨울에는 낙엽 놀이를, 겨울에는 눈 장난을 하며 항상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고 어루만지곤 해요. 이처럼 진정한 사랑이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에서 상대방에 대한 소중함과 서로 삶을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인생에서 사랑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사랑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세요.

조승희·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