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한자, 삼국시대 중국과 교류하면서 본격 사용했어요

입력 : 2015.09.14 03:24

짐승 뼈 등에 새겨진 '갑골문자', 세월 속 다듬어져 지금 한자로 변해
중국에 가장 오래된 문자로 인정받아… 우리나라엔 기원전 2세기쯤 전래 돼

얼마 전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배우는 국어 교과서의 주요 낱말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어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거나 본문 옆 여백이나 각주(본문 속 어떤 부분의 뜻을 보충할 때, 본문 아래쪽에 따로 설명해 놓은 것)에 한자를 쓰겠다는 것이지요. 병기(倂記)는 함께 나란히 적는 것을 말해요. 이를 둘러싸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에 선 사람들의 논쟁이 거세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한자어를 쓰게 되었을까요? 또 한자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동물 뼛조각에 문자가

"만병통치약 용골!"

"이 뼈를 가루 내어 마시면 열병 뚝!"

1899년 중국 베이징 거리에 있는 어느 한약방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만병통치약이라며 팔던 용골 즉, 동물의 뼛조각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지요. 스승 왕의영의 집에 문병을 가던 유철운이란 사람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고요. 왕의영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오래된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로 열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었어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창우

"동물 뼛조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사람들이 저런 엉터리 약장수를 믿다니 쯧쯧."

그런데 스승 집에 도착한 유철운은 스승 방에서 좀 전에 한약방에서 팔던 용골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동물의 뼛조각에 글자가 새겨진 것도 보게 되었지요.

"어? 뼈에 글자가 새겨져 있네." 유철운의 말에 왕의영도 그 뼛조각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뼛조각에 새겨진 글자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같다고 말했어요.

◇갑골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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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유철운은 약 4년에 걸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용골을 5000조각이나 사 모았어요. 그리고 스승 왕의영과 함께 용골에 새겨진 문자를 책에 기록하여 1903년에 세상에 널리 알렸지요. 당시 고대 문자와 문명을 연구하던 중국 학자들은 용골에 새겨진 문자가 거북의 등껍질과 소 같은 짐승 뼈에 새겨진 문자라고 해서 갑골문자라고 불렀고요.

갑골문자는 그때까지 전설로만 전하던 고대 왕조인 상(商)나라의 유적지를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되었죠. 상나라는 후기에 도읍지를 은(殷)이라는 곳으로 정해 은나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갑골 즉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 뼈에 문자를 새기고, 이것을 불에 쬐어 나타난 형상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거든요.

1928년부터 지금의 중국 허난성 안양현 샤오툰촌이라는 곳에서 용골과 같은 갑골 파편이 대량 발굴되었고, 그곳이 상나라의 후기 도읍지인 은(은허)으로 밝혀지게 되었어요. 상나라는 고고학적 연대를 알 수 있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로, 갑골문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지요.

◇한자의 기원

역사학자들은 상나라 전기는 기원전 1600년부터 1300년까지, 도읍을 은으로 바꾼 상나라 후기는 1300년부터 1046년까지로 짐작하고 있어요.

전설에 따르면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는 상나라 때보다 훨씬 앞선 3황 5제 시대에 창힐이라는 사람이 새나 짐승 발자국을 보고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학자들은 창힐이라는 사람이 그 많은 문자를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워 한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만들고 다듬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지요. 특히 중국에서 발굴된 갑골문자가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변형되고, 그 수가 증가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갑골문자가 한자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한자는 우리나라에 언제 전해지게 되었을까요?

◇한자의 전래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래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짐작해요. 이 시기 즉 기원전 195년에는 연나라 사람 위만이 중국 땅에서 고조선으로 건너와 위만 조선을 세웠고, 기원전 108년에는 중국 한나라의 무제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의 영토에 한사군을 설치했기 때문이에요. 이 무렵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한자가 우리 민족에게 전해졌을 거라는 것이지요.

그 뒤로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세워진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한자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해요. 고구려는 산상왕 때를 거쳐 소수림왕 때 이미 한자를 활발하게 사용했고, 백제는 근초고왕 때 일본에 한자를 전해 주기도 했어요. 신라는 중국 전진과 활발하게 외교 관계를 맺었던 내물왕 때부터 한자를 본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하고요.

그렇게 우리나라에 전해진 한자는 우리말과 뜻을 전하는 데는 다소 불편이 있었지만, 그 뒤로 우리말을 기록하는 문자로 사용되었어요. 그러다가 세종대왕이 우리말에 어울리는 문자인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게 된 것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한글이 없을 때 우리 조상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었어요. 이를 차자표기법 또는 한자차용표기법이라고도 해요. 차자표기법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두와 구결, 향찰이라는 것을 들 수 있고요. 그렇다면 이두와 구결, 향찰은 어떤 방법으로 한자를 빌려와 우리말을 표기한 것일까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