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영국의 여왕, 그녀는 왜 '검은 드레스' 고집했을까

입력 : 2015.09.11 03:09

63년 넘게 여왕으로 군림한 빅토리아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 앨버트 죽자 그를 애도하며 40여 년 검은 옷 입어
英 전성기 누렸던 그녀의 통치시기… 많은 영국인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최근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이 손꼽은 역대 최고의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라고 해요.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는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9일 오후 5시 30분(현지 시각)을 기준으로 영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군림한 왕으로 등극했죠.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이 왕관과 함께했던 2만3226일 16시간의 세월을 넘어선 거예요. 두 여왕은 시기는 달라도 세계사의 굴곡을 겪으며 영국인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지요. 푸른색 옷을 즐겨 입는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빅토리아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걸로 유명해요. 당시 귀족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던 것과도 대조되죠.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왜 검은색 드레스를 고집한 걸까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그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Corbis / 토픽이미지

1837년, 열여덟 어린 나이에 여왕이 된 빅토리아에게 정치는 낯설기만 했어요. 의회를 구성하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다툼에 끼어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는 위기를 겪고 있었어요. 때마침 독일계 왕족인 동갑내기 외사촌 앨버트가 영국을 방문했어요. 누가 봐도 훤칠하고 준수한 용모에 지성을 갖춘 신랑감이었지요. 빅토리아는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었죠.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빅토리아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어요. 새하얀 옷감은 구하기 어려운 데다가 세탁도 어려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말이죠. 눈처럼 하얀 드레스는 여왕의 결혼식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웨딩드레스의 원조가 되었어요.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의 결혼식 그림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의 결혼식. /위키피디아

영국 여왕을 아내로 둔 앨버트는 남편으로서 어떻게 조력했을까요? 지금까지 여왕의 남편들은 별다른 호칭이나 역할이 없었어요. 메리 1세의 남편 펠리페 2세는 그냥 에스파냐 왕이었어요.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이었고, 명예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메리 2세와 남편 윌리엄 3세는 공동으로 왕이 되어 통치했지요.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죽은 여왕의 남편도 있어고요. 그들과 달리 앨버트는 여왕의 그늘에 가린 존재가 아니라 여왕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되었어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답게 신실한 사랑을 보여주었어요. 빅토리아에게는 남편이자 선생님이었고, 부모님이었으며, 개인 비서였지요. 그녀가 편두통과 신경질 증세로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참을성 있게 받아주었어요. 자녀 9명을 낳아 기르는 동안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점점 덩치가 커져도 사랑스럽다는 말을 잊지 않았어요. 그는 복잡한 런던을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를 좋아했어요. 빅토리아는 앨버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런던과 멀어질수록 정치 개입이 줄어들어 다수당의 수상이 책임지고 정치하는 전통이 자리를 잡았고요.

1837년 즉위식 당시 빅토리아 여왕(위).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그들의 자녀들 그림
1837년 즉위식 당시 빅토리아 여왕(위).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그들의 자녀들(아래). /위키피디아
앨버트가 특히 정성을 기울여 주도했던 것은 1851년의 런던 만국박람회였어요.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기계들을 선보이면서 영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최초의 엑스포(EXPO)였지요.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수정궁은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했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영국의 전성기를 상징했어요. 1857년 드디어 영국 의회에서 앨버트에게 '여왕의 부군(The Prince Con sort)'이라는 호칭을 결의합니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이 호칭을 받은 사람은 앨버트 한 사람뿐이에요.

어쩌면 실질적인 영국 왕이었을 앨버트는 마흔두 살의 나이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고 말아요. 빅토리아는 깊은 실의에 빠졌고, 검은 상복으로 남편을 애도했죠. 유난히 검은 드레스의 이미지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에요. 그녀의 검은 옷은 죽을 때까지 40여년간 계속됐어요.

빅토리아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무려 63년이 넘는 시간을 여왕으로 군림했어요. 이를 흔히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는데요. 영국인에게는 좋은 시절을 뜻해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죠. 그 나라에 아직도 남아 있는 빅토리아의 이름을 딴 지명과 건물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실상은 말 그대로 격동기였어요.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인 풍요가 이루어졌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는 교통, 주택, 환경, 실업, 전염병 등 사회문제를 가져왔어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표현된 영국 사회의 뒷골목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이지요. 의식이 성장한 노동자들이 정치 참여를 요구하며 선거권 확대 운동이 일어났지요. 주변 국가에서는 왕을 없애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이 어수선한 시기에 입헌군주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왕으로서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은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녀의 검은 드레스는 모범적인 영국 가정을 이뤘다는 칭송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요. 보수당의 디즈레일리 수상이나 자유당의 글래드스턴 수상과도 정치적 균형을 유지했어요. 실질적인 통치는 다수당의 대표인 수상이 하지만, 상징적 존재로서 국왕의 위상을 유지했죠. 조지 1세 때 시작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식 입헌군주제의 원칙은 빅토리아 여왕 때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