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사랑하는 가족,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나요"

입력 : 2015.09.09 03:08

[83] 조위한 '최척전'

주인공 '최척'의 기구한 운명 듣고 전쟁 중 그의 가족 이별·재회 다뤄
주인공의 삶 사실적으로 표현해…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고통 받은 당시 조선 백성의 아픔 녹아 있어요

한 설문조사 기관에서 20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광복절 인식 조사' 결과 74%의 학생이 광복 연도인 '1945'를 제대로 알고 있고, 그중 66%가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을 추모한다고 대답했어요. 기성세대들의 우려보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죠.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더 의미 있는 결과가 아닐까 해요.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나라를 지켜온 데엔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답니다.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을 지배했던 여러 국가의 숱한 침략에 저항해 왔어요. 그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웠고,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심한 악조건 속에서 참고 버텨야 했던 세월이었지요. 때로는 대를 이어 이러한 비참하고 억울한 삶을 견뎌내야 하기도 했고요.

남원의 사대부인 조위한(1567~1649)이 집필한 '최척전'은 이러한 암담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낸 조선시대의 고전이에요. 최척이 찾아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기록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술했다는 가탁법의 형식을 빌려 썼지요. 가탁법은 자신의 창작임에도 세간의 비난을 듣거나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벌을 받을까 두려워 이를 피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쓰이곤 했답니다. 작가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도 참전했던 사람이기에 작품 속 인물과 배경이 주는 생생함이 그대로 녹아 있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최척전'은 1592년 임진왜란부터 1597년 정유재란을 거쳐 1619년 후금의 명나라 침입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가족의 이산(離散)과 재회를 다루고 있어요. 전란으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던 당시 조선 사회의 참상은 물론이고, 삼대로 이어지는 수십 년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상세하고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어요.

"우리는 산속에 숨어 있다가 왜적에게 여기까지 끌려왔다네. 왜적들은 배가 있는 곳까지 오자 남정네만 가려 싣고 칼에 찔려 병이 들거나 늙어서 쇠약한 사람들은 이렇게 버렸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최척과 옥영은 임진왜란으로 이별하게 되었는데, 징집되어 갔던 최척이 잠시 돌아와 옥영과 혼인하여 아들 몽석을 낳아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곧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남원이 함락되자 가족은 다시 생이별을 해야 했어요. 옥영은 왜병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최척은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나머지 가족은 조선에 남게 되었죠. 여러 해가 지나고 최척과 옥영은 우연히 안남(베트남)에서 재회하여 중국에서 둘째 아들 몽선을 낳는답니다.

"최척은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주우를 따라 항주로 갔다. 그해는 정자년(1600년) 봄이었다. 최척은 주우와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을 왕래하였다. 이 항구에는 왜선 10여 척이 열흘 전부터 정박하고 있었다. (중략) 그때 왜선에서 염불하던 소리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염불 소리 대신에 조선어로 절구를 한 수 읊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몇 년 후에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하자 최척은 명나라 군인으로, 몽석은 조선의 군인으로 출전하여 다시 헤어지고 말았는데, 부자는 후금의 포로가 되어 만나게 되었죠. 이후 부자는 수용소를 탈출하였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조선으로 돌아와 단란한 삶을 누릴 수 있었어요.

특히 등장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당시 다른 고전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에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겪는 고초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 기법을 취한 고전은 극히 드물답니다. 대다수 고전 소설에서는 영웅 개개인이 가진 초월적 힘으로써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아! 아비와 아들, 남편과 아내, 시부모 형제가 네 나라로 흩어져 시름없이 바라본 것이 세 번이었다. 적지에서도 궁리하여 일을 마련했고, 사지를 나고 들었는데 마침내 모두 모여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최척전'은 조선·일본·중국·베트남·만주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당시 지리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요. 소설을 읽고 있으면 저자가 직접 중국과 베트남을 방문했을 거라는 짐작이 들어요. 이처럼 역사성에 사실성을 더한 작품이기에 17세기 소설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답니다.

'최척전'을 통해 깨달을 수 있듯 나라의 힘이 약해지면 국민의 삶은 고단해지기 마련이에요.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만큼이나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돼요. 전쟁을 좋아하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타국의 침략을 버텨낼 만한 힘은 있어야 하겠죠?

#이야기

최근 영화 '암살'이 천만 명을 돌파하며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어요. 독립군이 친일파를 암살한다는 내용이에요. 나라를 잃고 만주와 중국 항저우 등으로 떠돌아야 했던 조선인의 모습은 '최척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매우 닮아 있답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영화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을 거예요. 이러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단지 영화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의 정립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하죠. 오늘, 역사책 한 권 을 사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한국사 중에서 여러분이 가장 관심이 가는 시대는 언제인가요? 왜 그 시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고, 그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김대근·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