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교과서 여행] 걷다 보면 소설 속 내용 스쳐 가요… 그의 추억 사이 '메밀꽃밭'
[126] 이효석문학관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지금 하얀 메밀꽃 천지랍니다. 이효석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메밀꽃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죠. 작가 이효석(1907~1942)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꽃 핀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어요.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치 아름다운 서정시를 보는 듯한 이 짧은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에 숨이 막히곤 한답니다. 달빛이 흐븟하다니.
그런데 단어를 이해하고 읽으면 왜 '메밀꽃 필 무렵'을 단편소설의 백미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어요. 마치 한 편의 영상물을 보는 듯한 풍경이 그려지거든요. 이효석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소설을 쓰게 된 걸까요? 그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곳, 그리고 작가 이효석을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효석문학관입니다.
이효석의 고향은 문학관이 있는 봉평이랍니다. 학교를 오가며 메밀꽃이 피는 계절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메밀밭을 사이에 두고 걸어 다녔죠. 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과 평양 등에서 살았지만, 유년기에 보낸 고향에서의 추억과 경험은 훗날 이효석 문학의 바탕이 되었어요.
- ▲ 이효석문학관에서 만난 이효석 작가의 동상. /이효석문학관 제공
입구에 있는 이효석문학비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이효석문학관이 있어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아래로 한적한 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답니다. 요즘은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꽃이 지면 메밀을 수확하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메밀국수, 메밀묵 등이 바로 이 메밀이랍니다. 이효석문학관에 들어가면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답니다. 이효석의 작품이 발표된 잡지와 신문, 책과 유품 등이 시간순으로 정리가 잘돼 있거든요. 문학과 생애를 다룬 영상물은 더욱 이해를 돕고 있죠.
이곳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집필실 풍경이에요. 책상, 책장과 함께 피아노와 뚜껑이 열린 축음기, 그 뒤에 크리스마스트리, 벽에 'MERRY X-MAS!'라고 커다랗게 붙어 있는 글씨, 외국 여배우의 사진. 이효석이 살았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년 전. 옛날 우리나라 작가의 방이라는데 언뜻 와 닿지 않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 옆으로 오래된 사진과 해설을 보면 이해가 돼요. 1930년대 이효석이 살던 평양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꽤 비슷하거든요. 문학관을 지을 때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 집필실은 이효석의 일상생활을 비롯해 취미, 그가 관심을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이효석문학관이 다른 문학관과 정말 다른 점은 문학관 한쪽에 '세계의 메밀 음식' '메밀면 뽑기 과정' '메밀묵 만들기' 등 메밀 자료 전시실이 있다는 것이에요. 조금은 뜬금없다 싶지만, 이효석의 대표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죠?
우리나라 메밀 주요 산지는 제주도, 경북 봉화 등 여러 곳이 있어요. 그런데도 메밀 하면 봉평이 떠오르는 것은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과 그것을 지은 작가 이효석의 고향이 봉평이기 때문일 거예요.
이효석문학관 아래로 내려와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이효석 생가, 이효석 평양집 등이 복원돼 있어요. 그리고 반대쪽 아래로 내려가면 '메밀꽃 필 무렵'에 허생원과 성 처녀가 처음 만난 물레방앗간이 있답니다. 오는 9월 4일부터 13일까지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려요. 100만㎡가 넘는 메밀꽃밭을 허생원처럼 나귀를 타고 가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죠. '흐븟한'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밭을 걸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볼 수 있을 거에요.
[1분 상식] 이효석은 누구인가요?
호는 가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어요. 1925년 콩트 ‘여인’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28년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답니다. 대학 시절에는 결석을 많이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죠. 함경북도 경산에서 영어 교사 등을 지냈어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한 것은 1936년.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으며 작가로서도 유명세를 이어갈 때였답니다. 그러나 1940년 아내와 둘째 아들을 차례로 잃고 1942년 서른다섯 짧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