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유산 탐방] 중세에 비단 사고팔던 무역의 중심지, 화려했던 과거 흔적 남아 있어
[24] 라 론하 데 라 세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La Tomatina)'가 열리는 날이에요. 잘 익은 토마토를 서로에게 던지며 즐기는 이 축제는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 스페인 발렌시아 주의 작은 마을인 부뇰에서 열리죠. 토마토 축제는 1940년대 중반에 시작됐는데요, 초창기에는 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어요. 하지만 토마토 축제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고, 현재는 매년 3만여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죠.
'토마토 축제의 마을' 부뇰을 품은 발렌시아 주는 지중해를 접하는 스페인 동부 지역에 있어요. 지중해식 농업이 발달한 곳으로 올리브와 포도 산지로도 유명하지요. 그런데 발렌시아 주의 주도이자 항구 도시인 발렌시아는 본래 15~16세기에 세계 각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들던 국제적인 무역도시였어요.
- ▲ 비단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유적지 스페인 발렌시아의 라 론하 데 라 세다. 발렌시아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토마토 축제(아래 사진). /위키피디아
15세기 들어 항해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유럽의 여러 국가가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지요.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막강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은 가장 광대한 해외 영토를 개척한 해상 무역의 강자로 떠올랐지요. 특히 발렌시아는 강력한 국력에 지중해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이 더해져 당시 지중해의 대표적인 상업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무렵 유럽에서 중요한 무역 상품 중 하나가 동양의 비단이었는데요, 스페인 해상무역의 거점답게 발렌시아에는 비단을 대규모로 사고파는 전문 거래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 거래소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유적지가 바로 '라 론하 데 라 세다(La Lonja de la Seda)'입니다. 우리말로 '비단 거래소'라는 뜻이죠.
'라 론하 데 라 세다'는 크게 4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인들의 주요 거래 장소였던 '살라 데 콘트라텍시온',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는 예배당을 포함한 탑, 화려한 금박과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회의실을 갖춘 3층 건물 '콘술라도'와 오렌지 향기가 물씬 풍기는 넓은 정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유적지는 1482년부터 1533년까지 약 50년에 걸쳐 조성되었는데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후기 고딕 양식 건축물들을 통해 당시 발렌시아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의 건축물들은 여느 고딕 양식 건물들과 달리 르네상스풍의 장식까지 더해진 지중해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독특한 건축미를 지닌 '라 론하 데 라 세다'는 1996년 스페인의 2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후기 고딕 건축 양식을 아름답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만든 비종교적 건물이란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지요.
'라 론하 데 라 세다'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후기 고딕 양식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유적지에는 지금도 농산품을 취급하는 중요한 무역 거래소가 있어 역사적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 곳곳에 과거 무역 거래에서 사용하던 탁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1분 상식] 대항해시대?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의 배들이 신항로를 개척하며 세계를 탐험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마젤란의 세계 일주 등 역사에 남은 굵직한 항해사도 이 시대의 일이랍니다.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국가 간 교역을 활발하게 하기도 했지만, 식민 지배의 시발점이 되기도 해 양면의 평가를 받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