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흔들던 왕자의 난, 최후 승자는 누구?

입력 : 2015.08.17 03:07

세자 책봉서 밀린 이성계 아들 '방원'
왕자의 난 일으켜 신하·형제 죽이고 조선 3대 임금 '태종'에 오르게 돼
조선 초기, 왕위 계승 둘러싸고 형제·부자끼리 싸운 역사 있어요

어느 재벌 기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사이의 다툼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어요. 기업을 세우고 이끌어온 회장이 고령으로 회사를 이끌기 어려워지자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서로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인 것이에요. 큰아들이 아버지를 앞세워 동생인 둘째 아들을 해임한다고 하자, 둘째 아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사회를 열어 거꾸로 아버지를 대표이사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대요. 언론에서는 '왕자의 난' '형제의 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사태에 대해 보도를 했고요. 왕도 왕자도 없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왕자의 난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일 텐데, 왜 언론에서는 굳이 왕자의 난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그 이유는 이번 사태가 조선 왕조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라는 사건과 무척 닮아서예요. 과연 왕자의 난은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가 왕에게 불만을 터뜨리다

"아바마마, 어찌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삼겠다고 하십니까? 그것도 엄연히 첫째 부인이 낳은 장성한 아들들이 있는데 둘째 부인이 낳은 어린 아들로 세자로 삼으시다니요?"

"세자는 임금인 내 맘대로 결정하는 것이니라."

"이럴 수는 없사옵니다. 예로부터 세자는 큰아들로 삼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듣기 싫다. 물러가거라."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에게서 낳은 둘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어요. 그러자 이성계의 첫째 부인인 신의왕후가 낳은 다섯째 아들이자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방원이 이를 반대했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창우

태조 이성계가 방석을 세자로 삼은 것은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의 영향이 컸어요. 이방원은 궁궐에서 물러나며 분을 삭이면서 이런 다짐을 했지요. '이게 다 신덕왕후와 정도전이 꾸민 일, 어디 두고 보자'라고요.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다

다음 해인 1393년에 이성계의 큰아들인 방우가 병으로 죽고 말았고, 1395년에는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가 조선에 서신을 보내 원나라가 통치하던 조선의 땅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이에 정도전은 요동 정벌을 통해 명나라와 맞서자며 사병, 즉 개인이 거느리고 있던 병사를 나라의 군대에 합치게 하자는 주장을 했지요. 이방원과 그 형제들은 목숨을 걸고 이에 사병을 내놓을 수 없다며 맞섰어요. 사병을 빼앗기면 자기들은 힘을 잃고 정도전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중에 1396년에 신덕왕후 강씨도 병으로 죽고, 1398년, 태조 이성계도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어요. 이때를 틈타 이방원은 자기를 따르는 병사들을 시켜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정도전과 남은 등을 죽였어요. 세자였던 방석과 신덕왕후가 낳은 큰아들 방번은 귀양을 보냈다가 자객을 시켜 살해했고요. 이렇게 왕자였던 방원이 정도전과 함께 또 다른 왕자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들을 죽인 것을 제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해요.

◇방원 대신 방과가 왕의 자리에 오른 까닭

기사 관련 일러스트

태조 이성계는 자신이 오른팔과도 같은 신하 정도전과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몸도 좋지 않고 권력은 이미 방원에게 넘어가고 말았으니 그저 분노와 슬픔을 삼키며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쓸쓸히 고향인 함흥으로 떠났지요. 왕위를 이을 세자는 방원이 아닌 둘째 아들 방과가 되었고요.

"아우, 난 왕의 자리에 욕심이 없네. 왕의 자리는 자네의 것이네."

방과는 왕의 자리를 거절했지만, 방원이 왕의 자리에 오르라고 떠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세자가 되었다가 왕위에 올랐어요. 아무 힘도 없으면서 왕이 된 방과가 조선의 제2대 임금인 정종이에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이방원이 둘째 형인 방과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한 것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궁궐에서 내쫓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형에게 잠깐 왕의 자리를 맡겼다가 적당한 때에 찾아오면 된다는 생각에서 말이에요.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다.

마지못해 왕이 된 정종은 나랏일은 모두 동생인 방원이 처리하게 하고 자신은 사냥과 격구 등 오락이나 하며 세월을 보냈죠. 아무 힘이 없어 나랏일을 자기 맘대로 결정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신하들이 나랏일에 대한 결정을 해달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었지요.

"정안공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라."

정안공은 이방원을 말해요. 그러던 중에 1400년 정월에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자 방원의 형인 방간이 박포라는 인물과 손을 잡고 방원의 세력을 꺾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방간과 방간이 거느리는 병사들, 방원과 방원이 거느리는 병사들이 개성에서 맞서 싸웠는데 결국 방원이 승리를 거두어요. 방간은 생포되어 유배되었고, 박포는 붙잡혀 죽임을 당했지요. 이를 제2차 왕자의 난이라고 불러요.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를 거두며 지위와 세력이 더욱 튼튼해진 방원은 그해 11월에 정종에게 왕위를 넘겨받아 조선의 제3대 임금이 되지요. 그가 바로 조선 3대 임금 태종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왕의 자리에 올라서는 왕권을 강하게 하며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어요. 태종이 이루어낸 대표적 업적이나, 태종 때 새롭게 마련된 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